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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CU Magazine 5월 4주차 - 이번시즌을 끝으로 지휘봉을 내려놓은 사나이들의 스토리.

FCU magazine/2023-24 시즌

by FCU회장 2024. 5. 22.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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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CU Magazine 5월 4주차 - 이번시즌을 끝으로 지휘봉을 내려놓은 사나이들의 스토리.

 

 

 

목차

 

 


Ⅰ. 메인테마 칼럼

 

Ⅰ-Ⅰ. '평범한 자와의 특별했던 9년'

-  김형섭

 

1. 서론

 

사진 출처: BBC sports

 

 

만남은 기대를 심어주는 동시에 이별에 대한 두려움도 가져오는 특별한 단어인 것 같다.  자신을 ‘Normal One’이라며 스스로를 낮춘 독일인과 리그 우승은 꿈꾸지도 못했던 잉글랜드 축구팀의 만남. 

약속된 이별이라지만, 어울리지 않는, 걸림돌이 있었던,  서로의 꿈을 이룬 소설 같은 만남이었기에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고 두려움이 앞선다. 그러나, 장편 소설에도 끝은 있는 법. 야속하지만, 9년 동안의 이야기를 되돌아보며 마무리 짓고자 한다.


2. 낙담한 콥의 열정을 깨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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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The Telegraph

 

 

클롭의 응원가 중에 "위르겐은 우리에게 '알다시피, 우리는 프리미어 리그에서 우승할 거야'라고 말했고, 그는 해냈다! 나는 그와 사랑에 빠졌고 기분이 좋아!"라는 가사가 있다.

많은 사람들은 아무리 클롭이라도 지난 세 시즌 동안 평균 5등을 기록하는 전형적인 리그 중상위권 수준의 클럽을 (12/13 7위, 13/14 3위, 14/15 6위) 우승을 시킬 순 없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도 그럴만한 것이 당시 리버풀은 하락세를 타며 위기에 빠져 중위권이라 놀림받던 팀이었다. 게다가, 스쿼드의 수준 역시 챔피언스리그 진출을 노리는 클럽들에 비해 보잘것없었다.

그러나, 그의 억제할 수 없는 열정은 다른 프리미어리그 감독들을 능가했고 답답하고 가망이 보이지 않았던 팀에 변화가 조금씩 생기기 시작했다. 팀 공격진의 핵심 쿠티뉴의 판매로 얻은 자금을 바탕으로 반 다이크, 파비뉴, 살라, 알리송과 같은 선수들을 영입하며 팀을 새롭게 한 층 한 층 쌓아 올렸다. 스쿼드가 완성된 후 4-3-3을 바탕으로 ‘게겐 프레싱’과 ‘직선적 풀백’을 활용하며 리버풀의 성적을 회복하는데 큰 기여를 했다.

성공을 의심하고 낙담한 리버풀 팬들은 믿음이라는 것이 생겼고 선수들 사이에서는 위닝 멘탈리티가 자리 잡자, 안필드에 붉은 함성과 자부심도 살아나기 시작했다. 30년 전에 유럽에서 가장 잘 나갔던 붉은 제국의 전성기가 다시 돌아올 것이라는 희망이 생겼다. 그리고 결국 프리미어리그 출범 이후 첫 우승이자 30년 만에 도메스틱 정규리그 우승을 이뤄냈다.

물론, 펩 과르디올라의 맨체스터 시티에게 밀려 리그 우승은 1회에 그쳤지만, 매 시즌 우승 경쟁을 하여 콥들의 생각을 바꿔준 것만으로도 그가 높게 평가되어야 할 이유는 충분하다.


3. 적극적인 유스 기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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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Fotmob

 

 

누군가가 나에게 클롭의 선수 영입 능력이 뛰어나냐 묻는다면 그건 아니라고 답한다. 그리고 뒤에 “근데, 어린 선수들 잘 키워낸다.”라고 말을 붙인다. 즉 클롭은 유스 선수 기용에 있어서 굉장히 적극적인 감독 중 한 명이다. 리버풀이 매 시즌 부상으로 신음하지만 매 시즌 3~4명 정도의 유스 선수들이 프로 무대에 얼굴을 비춘다.

이미 도르트문트에서도 괴체와 후멜스, 카가와 신지를 정상급 선수로 육성한 바 있는 클롭이 정성껏 키워낸 리버풀의 유스 선수들은 부주장 아놀드를 필두로 엘리엇, 커티스 존스, 캘러허, 콴사, 브래들리 등 클롭의 선택을 받은 유스 출신 선수들이 기대 이상의 활약을 해주고 있다는 것이다.

선수를 영입할 때 상대 구단에게 지불해야 아는 이적료가 천정부지로 향하고 있는 현대 축구에서 유스 선수들이 꾸준히 성인팀에 올라와 활약하는 것만큼 반가운 것이 없다. 이는 팀 전체가 클롭의 철학에 따라 변화했기에 얻을 수 있던 결과물이기도 하다. 

위르겐 클롭 덕분에 리버풀은 이제 유스 선수들을 적극적으로 육성하고 기회를 주는 클럽으로 성장했고 이는 밝은 미래를 암시하고 있기도 한다. 클롭은 떠나지만 그의 유산은 계속될 것이다.

 

4. 최고의 경기 - 18/19 챔피언스리그 4강 2차전 vs 바르셀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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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Sky Sports


15/16 시즌 노리치 시티 상대 5-4 역전극을 최고의 경기로 선정할지 고민이 되었다. 그러나, 클롭의 붉은 제국을 설명하는 데 있어서 ‘안필드의 기적’은 빼놓을 수 없다. 5년이 지난 경기임에도 얼마나 짜릿했으면 그때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캄프 누에서 펼쳐진 1차전에서 3-0으로 패배하였기에 반포기 상태도 텔레비전을 틀었다. 살라의 ‘Never Give Up’ 티셔츠를 봤음에도 나는 메시가 있는 바르셀로나를 상대로 최소 4골 넣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었기 때문에 일말의 기대조차 하지 않았다.

하지만, 클롭의 리버풀은 여러 시행착오를 겪으며 완성된 상태였다. 집중력과 끈기를 바탕으로 가꿔진 위닝 멘탈리티는 말도 안 되는 골을 만들어냈고 결국 팀은 4-0으로 승리하게 되었다. 이때의 승리로 결승이 진출한 리버풀은 이스탄불 기적 이후 14년 만에 빅이어를, 클롭은 리버풀에서의 첫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이후, 우승에 익숙해진 리버풀은 슈퍼컵, 클럽 월드컵, 프리미어리그를 우승하며 만년 ‘무관’이라는 이미지를 탈피하게 되었고 선수들에게는 우승 DNA가 생겼다. 고기도 많이 먹어본 사람이 잘 먹는다고 클롭 체제에서 우승이라는 고기를 여러 번 먹어본 선수들은 아직 건재하기에 리버풀은 여러 대회에서 다시 우승에 도전할 것이라 믿는다.

 

5. 친근한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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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Liverpool Echo

 


클롭의 별명은 굉장히 다양한데 ‘영감님’이라는 별명을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한다. 나를 비롯한 콥들이 클롭을 사랑하는 이유가 단순히 성공적인 성적 때문만은 아니었다.

우리는 그의 열정을 사랑했다. 전반전 종료 휘슬이 울리기 전에 라커룸으로 뛰어갈 때 팬들은 기대를 했고, 경기에서 승리했을 때의 주먹 삼창은 팬들을 열광하게 했으며, 고생한 선수들을 위한 뜨거운 포옹과 관심은 팬들을 흐뭇하게 만들었다.

그의 성격을 사랑하기도 했다. 누구보다 솔직하지만 때론 어린아이처럼 엉뚱한 장난을 치며 굵은 목소리로 껄껄껄 웃는 영감님 같은 모습 때문에 우린 그를 친근하게 느꼈다. 그리고 그는 떠나는 마지막 고별식에서까지 차기 감독인 슬롯의 응원가를 부르고 농담하며 웃음을 선사했다.

클롭은 콥들에게 감독으로서도 사람으로서도 사랑을 받았다. 이런 감정은 2~3년 만에 형성되지 않는다. 친근함을 느낄 수 있는 감독을 리버풀에서 다시 볼 수 있을까.

 

6. 다가오는 두려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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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Liverpool

 


클롭이 왔을 때 나는 아침과 저녁에 네이버 스포츠로 하이라이트로 축구를 접한 11살짜리 초등학생이었다. 9년이 지난 지금 나는 이제는 새벽마다 축구를 보는 20살 대학생이 되었다.

내가 본 리버풀의 감독은 클롭이 유일하다. 다른 감독이 안필드에서 소리치는 것을 상상조차 해본 적이 없다. 클롭은 나에게 그런 존재였다. 내가 축구를 좋아하게 해준, 지구 반대편에 위치한 잉글랜드 축구팀을 좋아하게 해준, 축구 기자라는 꿈을 키우게 해준 사람이다. 클롭 덕분에 축구를 보면서 처음 울어봤고, 밤도 새보았다.

그래서 그런지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그를 잊지 못할까 봐, 다음 감독에게 신뢰를 주지 못할까 봐 두렵다. 하지만 리버풀은 스페셜 원에게 키워진 스페셜 팀이다. 클롭이 바라는 것은 자신 없이도 우승 경쟁을 하는 팀일 것이다.

“고마워요.” 이 한마디가 모든 것을 대변할 수 있을 듯하다. 정말 고마웠어요.

잘 가요. 영감님. YNW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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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섭 칼럼] 평범한 자와의 특별했던 9년

만남은 기대를 심어주는 동시에 이별에 대한 두려움도 가져오는 특별한 단어인 것 같다. 자신을 ‘Normal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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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Ⅱ. '토마스 투헬, 바이에른 역사상 최악의 감독. 그리고 아직 끝나지 않은 최악의 시대'

-  박수용

 

1. 서론


2012-13 시즌부터 2022-23 시즌까지 바이에른 뮌헨은 11회 연속 분데스리가 우승이라는 금자탑을 쌓았다. 소위 5대 리그라 불리던 유럽 최상위 리그에서 이 기록은 바이에른 뮌헨만이 가지고 있고 변방으로 범위를 넓혀도 바이에른의 11회 연속 우승보다 많은 우승 기록을 가진 클럽은 라트비아 비르스리가에서 1991년부터 2004년까지 14회 연속 우승을 이뤄낸 절대강자 스콘토 리가, 벨라루스 프리미어 리그 13연패의 바테 보리소프, 그리고 노르웨이 엘리트세리엔 13회 연속 우승을 이뤄낸 로센보르그 BK가 전부였다.

그리고 바이에른 뮌헨은 압도적인 전력차와 자금력을 바탕으로 이 기록들마저 깰 것으로 보였는데 그나마 바이에른 뮌헨에 대항할 수 있다고 평가받았던 보루시아 도르트문트가 바이에른 뮌헨만 만나면 기를 펴지 못했기에 그럴 가능성이 더 높다고 평가받았다.

 

불과 4년 전, 바이에른은 트레블 위너였다.

 

 

실제로 이번 여름 이적시장에서 바이에른 뮌헨은 지난 시즌 속을 썩인 최전방 문제를 해리 케인으로 해결했고 뤼카 에르난데스의 이탈릉 지난 시즌 유럽 무대 최고의 센터백 중 한 명이었던 김민재로 대체했으며 이외에도 콘라트 라이머와 라파엘 게헤이루를 스쿼드에 추가했고 유스팀에서는 파블로비치가 괄목할 성장을 이뤄내며 1군 멤버로 자리잡았다. 비록 DFL슈퍼컵에서 라이프치히에게 3-0으로 대패하고 등록 시간문제와 풀럼의 최종 승인이 불발되며 팔리냐를 영입하지 못했지만 그럼에도 바이에른은 분데스리가 우승후보로 평가받았다.

 

바이에른은 케인, 김민재, 라이머, 게헤이루를 영입했고 부족한 6번 포지션에서도 초신성 파블로비치를 발굴했다.



전반기에는 레버쿠젠의 무패 행진에도 불구하고 잘 따라가며 여전히 우승 가능성 자체는 매우 높았다. 하지만 후반기의 투헬은 스스로 무너졌다. 우승 경쟁팀 레버쿠젠에게는 3-0으로 대패해 우승 경쟁에서 아웃되었고 3위 슈투트가르트에게도 3-1로 패하며 추격을 허용하더니 결국 마지막 라운드에서 바이에른 뮌헨이 호펜하임에게 지면서 슈투트가르트에게 준우승마저 내주며 21세기 최악의 시즌을 보내고 말았다.

팀 상황이 이렇다 보니 투헬 체제에서 부진하거나 중용받지 못했던 요주아 키미히, 레온 고레츠카는 불화설 및 이적설에 시달렸고 전반기에는 극단적으로 우파메카노와 김민재만 기용했고 후반기에는 반대로 그 둘을 완전히 배제하고 부상이 없는 한 더리흐트와 다이어만 기용하는 모습을 보이며 수비라인 구성에서도 일관성 없는 모습으로 수비자원의 이적설 역시 심심찮게 나돌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투헬도 평정심을 유지하지 못하고 언론에서 여러 실언을 하며 상황을 더 악화시켰다. 무엇이 한때 전술의 천재라 불리던 투헬을 이렇게 나락의 길로 내몰았을까?

 


2. 첫 단추부터 꼬인 토마스 투헬 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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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21 시즌, 투헬은 램파드 체제에서 부진하던 첼시에 중도부임하며 아무도 예상치 못했던 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이뤄냈다. 그것도 편한 대진이 아닌 4강 레알 마드리드, 결승 맨체스터 시티라는 난이도 높은 대진에서 우승을 이뤄내며 첼시 팬들의 큰 지지를 받았다. 심지어 펩 과르디올라와의 전술 싸움에서는 연전연승을 거두기도 했다.

투헬은 첼시의 구단주 로만 아브라모비치와 여러모로 잘 맞았는지 과거에 머물렀던 마인츠, 도르트문트, 그리고 파리 생제르맹에서와는 다르게 별 잡음없이 좋은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투헬은 무리뉴에 버금가는 첼시의 레전드로 도약하리라고 팬들은 믿어 의심치 않았다.

 

마음이 잘 맞았던 두 괴짜 로만 아브라모비치와 토마스 투헬.



그러나 2022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하면서 투헬과 첼시 팬들의 꿈은 물거품이 되기 시작한다. 투헬을 전폭적으로 지원하던 로만 아브라모비치가 영국 정부의 러시아 견제에 영향을 받아 첼시의 구단주 자리를 박탈당했고 축구를 잘 모르는 미국의 보엘리가 구단주로 부임했다.

투헬과 보엘리는 의견이 잘 맞지 않아 프리시즌 내내 불협화음을 내다가 결국 2022년 9월에 구단측은 투헬을 첼시 감독직에서 경질했다. 설상가상으로 그 해 4월, 투헬은 13년 동안 결혼생활을 하던 아내 시시와 이혼하는 등 사적으로도 어려움이 겹쳤다. 그런 상황에서도 투헬은 현장 복귀를 위해 노력했고 실제로 흔들리는 안첼로티 대신 레알 마드리드로 부임한다는 기사와 안토니오 콘테 대신 토트넘에 부임한다는 기사도 여러 출처에서 나왔다.

바람은 다소 의외의 장소에서 곳에서 불었다. 2023년 3월 19일에 펼쳐진 레버쿠젠과의 경기에서 2-1로 패한 바이에른 뮌헨은 의장 올리버 칸과 단장 하산 살리하미지치의 주도로 회장 하이너조차 모르는 사이에 나겔스만을 "트레블에 적신호가 켜졌다."라는 다소 납득이 가지 않는 명분으로 전격 경질하는 도박수를 뒀고 야인으로 있던 토마스 투헬에게 지휘봉을 맡겼다.

 

갈라진 올리버 칸과 나겔스만



전반기 나겔스만의 바이에른 뮌헨은 핵심 공격수 레반도프스키의 이탈에도 분데스리가에서 1위를 유지하며 딱 세 경기만 패했고 UEFA 챔피언스리그에서는 바르셀로나, 인테르 밀란, 파리 생제르맹이라는 까다로운 상대들을 상대로 무실점 전승을 거두고 있었기에 이 결정은 다소 의외라는 평가가 주를 이뤘다. 특히 레버쿠젠 전을 제외하고 승리를 하지 못한 경기는 경기를 주도했으나 레반도프스키의 이탈을 대체하지 못했고 추포 모팅은 부상으로 나오지 못한 상황에서 일어난 일이라 논란이 커졌다.

트레블을 이뤄내지 못했다는 이유로 시즌 도중 모든 대회에서 순항하는 감독을 경질하는 클럽의 지휘봉을 잡은 투헬은 팀을 제대로 파악할 시간조차 없었다. 첫 경기 보루시아 도르트문트전에서 좋은 경기력으로 4-2로 승리했지만 2023년 4월 4일에 열린 DFB포칼 8강 프라이부르크전에서 2-1로 패해 탈락했고 일주일 뒤에 열린 UEFA 챔피언스리그 8강 맨체스터 시티전에서는 펩 과르디올라한테 준비한 수를 읽히고 역으로 저격당하며 3-0 대패를 했고 2차전 홈경기에서도 무승부를 거두며 챔피언스리그에서마저 떨어졌다.

 

잘못된 만남



심지어는 분데스리가에서도 호펜하임전 무승부 및 마인츠전과 라이프치히전 패배로 도르트문트에게 1위를 내준 상태에서 마지막 라운드에서 마인츠가 도르트문트를 잡아주는 도움을 받고 겨우 우승할 수 있었다. 결과도 최악으로 흘렀지만 내용마저 좋지 않았고 맨체스터 시티에서 임대이적해 나겔스만 체제에서 완전이적이 유력했던 칸셀루는 투헬 체제에 적응하지 못해 팀을 떠났다. 그리고 토마스 투헬로 트레블을 이뤄내겠다는 도박수에 실패한 의장 올리버 칸과 단장 하산 살리하미지치는 결과에 대한 실패 및 절차 위반으로 리그 마지막 경기가 끝나자마자 자리에서 물러났다.

 

쾨른과의 경기에서 팀의 우승을 확정짓는 결승골을 득점한 자말 무시알라



그럼에도 투헬은 임시로 복귀한 회네스와 루메니게, 그리고 드레센 체제에서 다시 한번 도전의 기회를 받게 된다. 하지만 투헬을 기다리고 있는 곳은 천국의 계단이 아닌 지옥의 내리막이었다.

 


3. 시간이 약?, 아니 시간이 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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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23 시즌 후반기, 투헬은 좋지 못한 시간을 보냈지만 그럼에도 그 당시 바이에른의 스쿼드는 투헬이 구상하지 않았고 아직 선수파악이 되지 않은 상태였다는 부분을 지적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실제로 급작스럽게 부임했기에 팀에 대한 파악을 하지 못했을 가능성도 있었다. 그러나 투헬의 2023-24 시즌은 2022-23 시즌 후반기를 능가하는 최악의 파국으로 치닫는다.

가장 급한 문제였던 9번 문제가 해결되었고 세리에 A 최고의 수비수 김민재를 영입한 투헬 체제의 바이에른 뮌헨은 이번에는 다를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라이프치히와의 슈퍼컵에서 3-0 대패를 당하면서 팬들을 불안하게 했다. 실제로 시즌 초반, 분데스리가 10승 2무, 챔피언스리그 5승 1무를 거둔 상황에서도 경기력은 좋지 않았고, 분데스리가 우승 경쟁팀 레버쿠젠과 라이프치히를 상대로는 무승부를 거뒀으며 3부리그 소속의 자르브뤼켄과의 포칼 2라운드에서는 1-2로 충격패를 거뒀다. 그러다가 결국 프랑크푸르트에게 1-5로 대패하며 투헬 체제에 대한 의구심은 증폭되었다.

 



후반기에는 투헬의 작전이 간파당했는지, 아니면 선수단과 불화가 더 심화되었는지, 둘 다인지는 모르겠지만 반등은커녕 그래도 표면적인 승률은 괜찮았던 전반기보다도 더 한심한 모습을 계속해서 보여줬는데 2008년 9월 20일 이후로 베르더 브레멘에게 16년 만에 패한 것을 시작으로 2월 11일에는 레버쿠젠과의 맞대결에서 나름 비장의 카드인 3백을 준비했으나 알론소에게 의표를 찔리며 3-0으로 대패했으며 이 경기를 시작으로 라치오와 보훔에게도 패하면서 3경기 연속 패배라는 굴욕적인 패배를 당했다. 특히 라치오전에서는 투헬이 올라가라고 지시했음에도 불구하고 선수단이 그 말을 무시하는 최악의 상황까지 벌어졌다.

그래도 2차전에서 라치오를 상대로 3-0 대승을 이뤄내며 분위기 반전에 성공하나 했지만 2024년 3월 31일, 그동안 도르트문트의 천적으로 군림했던 과거가 무색하게 2-0으로 패했고 이에 투헬은 인터뷰에서 레버쿠젠의 우승을 축하한다며 소속팀 보드진과 선수들을 비꼬는 최악의 인터뷰까지 했다. 그리고 다음 라운드에서는 하이덴하임한테 지면서 2011-12 시즌 이후 처음으로 분데스리가 한 시즌 5패 달성, 2000년 이후 분데스리가 데뷔 구단 상대 첫 패배 및 1991-92 시즌 이후 최악의 바이에른 감독이 되었고 레버쿠젠의 우승을 친히 확정해주며 바이에른의 좋지 않은 기록만 연달아 경신하는 최악의 모습을 선보였다.

 

1.분데스리가 데뷔 클럽인 하이덴하임전에 패한 투헬



비록 챔피언스리그에서는 8강에서 아스날을 제압하고 4강에서도 레알 마드리드를 상대로 선전했지만 결과적으로 탈락했고 분데스리가에서는 슈투트가르트에게 3-1로 패해 2위 자리마저 위태로워지고 결국 최종전에서 크라마리치한테 해트트릭을 당하며 2-4로 패하며 준우승마저 실패하고 3위로 밀려났다. 투헬과 함께 바이에른 역대 최악의 감독으로 평가받는 위르겐 클린스만이 장기간 감독으로 부임한 2008-09 시즌에도 시즌 막판을 하인케스가 치렀다는 점을 감안해도 준우승을 거뒀다는 부분을 감안하면 2006-07 시즌과 함께 21세기 최악의 시즌을 보냈다.

오트마 히츠펠트 이후 바이에른에서 주로 성공한 감독은 라인을 높게 올리고 상대 진영에서 볼 점유율이 높은 유프 하인케스, 펩 과르디올라, 그리고 한지 플릭과 같은 감독들이 좋은 성과를 냈다. 그러나 투헬은 다소 낮은 라인에서 높은 점유율로 풀어나가는 걸 선호했다. 그렇기에 전진 성향이 강해 리스크를 만드는 김민재 대신 다소 낮은 라인에서 적극적으로 소통하는 다이어를 기용한 것이다.

문제는 이런 방식을 투헬을 상대하는 감독들이 대부분 알고 있었고 라이프치히의 로제, 레버쿠젠의 알론소는 실제로 기동력이 빠르고 지구력이 우수한 공격수들을 활용해 고강도의 압박으로 바이에른이 위험 지역에서 볼을 내주게 유도했고 실제로 그렇게 대패했다. 그리고 간격 문제도 시즌 내내 해결이 안 되며 자네와 무시알라, 케인의 개인 역량으로 공격을 풀어나가는 것 역시 시즌 내내 변하지 않았고 결국 이 문제는 자네가 부상을 인내하면서 경기를 뛰다가 폼이 내려가자 바이에른의 경기력도 함께 내려가는 불상사가 펼쳐졌다.

무엇보다도 선수들을 제대로 장악하지 못했다는 부분이 가장 큰 미스다. 특히 나겔스만 체제에서 중용받았던 요주아 키미히는 투헬 휘하의 수석코치와도 다퉜다. 그리고 라치오와의 1차전에서 선수단이 투헬의 지시를 듣지 않는 모습을 보였고 투헬 역시 레버쿠젠전에서 패하고 자신의 전술이 아닌 선수탓을 한 정황이 포착되었다. 지휘 체계가 붕괴한 순간 전술은 무의미하다. 비록 막판에 노이어와 뮐러의 주도로 투헬의 연임을 이어나가자는 주장도 나왔지만 이는 바이에른이 투헬의 후임자로 선택한 매물들을 모두 놓쳤기에 선수들이 불안감에 빠질 가능성을 염려해 내린 선택으로 추정한다.

 

 

 

4. 바이에른 뮌헨 역사상 최악의 시대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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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에른을 어렵게 한 요인 중 하나였던 토마스 투헬이 떠났다. 그러나 아직 바이에른이 암흑기를 벗어날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인데 이는 바이에른의 새로운 보드진과 과거의 현명한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며 부정적인 영향력을 끼치는 회네스와 루메니게의 문제도 크다.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는 말이 있다. 실제로 감독선임에 영향력을 끼치는 인원이 너무 많다. 현재 회장 하이너, 의장 대행 드레센은 물론이고 단장 막스 에벨과 풋볼 디렉터 크리스토프 프로인트가 있다. 여기까지는 다른 구단들과 큰 차이가 없지만 바이에른에는 시어머니가 두 명 더 있는데 바로 명예회장 울리 회네스와 전 CEO 칼하인츠 루메니게까지 여섯 명이다. 가장 문제는 회네스와 루메니게는 자신들이 세운 업적을 바탕으로 강력한 권한을 가지고 있지만 책임을 지는 자리는 아니며 최근에는 감각마저 떨어진 모습을 보였고 이는 현 보드진에게 큰 부담이 된다.

 

회네스와 루메니게, 과거 바이에른을 위기에서 구하고 유럽 최고의 클럽으로 올렸지만 현재는 좋지 않은 모습을 보이고 있다.



결국 이 여섯 명은 서로 단합이 되지 않는 모습을 보였고 결국 한지 플릭, 율리안 나겔스만, 우나이 에메리는 물론이고 잠시 거쳐갈 감독으로 노리던 올리버 글라스너나 랄프 랑닉마저 놓쳐버리고 말았다. 더 심각한 것은 이 여섯 명이 딱 한 부분에서는 단합이 잘 된다는 것인데 그것은 바로 바이에른이 부르면 누구든 올 것이라는 안일한 운영, 즉 행복회로식 운영인데 2026년에는 레버쿠젠의 사비 알론소나 리버풀을 떠난 위르겐 클롭을 무조건 영입할 수 있을 것이라 상정하고 감독을 구하고 있는데 감독들 역시 중간 징검다리는 하고 싶지 않아서 거부하는 악순환이 계속해서 이어졌다. 도대체 어떤 방식으로 구단운영을 하는지 궁금하며 선수 관련해서도 이런 모습을 보여주면 에벨이 계획한 선수단 대개편 역시 순탄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투헬 선임 과정은 회장마저 몰랐던 올리버 칸과 하산 살리하미지치의 독단적인 선임이라면 투헬의 후임자를 선임하는 과정에서는 결정권자들 및 실무자들이 전임자들의 눈치를 과하게 봄과 동시에 바이에른이 부르면 임시직으로라도 올 것이라는 안일한 태도로 임하고 있는데 계속해서 이런 방식으로 일하면 투헬 다음으로 오는 감독이 누구라도 제대로 된 활약을 할 수 없다. 보드진이 지금처럼 일처리를 안일하게 한다면 제2의 투헬, 제3의 투헬이 나오는 것은 기정사실일 것이다. 제발 팬들을 위해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일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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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스 투헬, 바이에른 역사상 최악의 감독. 그리고 아직 끝나지 않은 최악의 시대

1. 서론2012-13 시즌부터 2022-23 시즌까지 바이에른 뮌헨은 11회 연속 분데스리가 우승이라는 금자탑을 쌓았다. 소위 5대 리그라 불리던 유럽 최상위 리그에서 이 기록은 바이에른 뮌헨만이 가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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Ⅱ. 테마 칼럼

 

Ⅱ-Ⅰ. '프라이부르크의 퍼거슨, 크리스티안 슈트라이히의 스토리'

- 박수용

 

1. 서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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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클럽은 저에게는 인생과 같습니다. 저에게는 위대한 클럽이고 좋은 시간들을 보냈지만, 하지만 지금이 가장 작별하기 좋을 때라 생각합니다."

- 크리스티안 슈트라이히

 


2023-24 시즌, 분데스리가 최장수 감독이자 프라이부르크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크리스티안 슈트라이히 감독이 이번 시즌을 끝으로 은퇴를 선언했다. 비록 분데스리가 우승은 이뤄내진 못했지만 프라이부르크 1군 감독으로만 13년간 머물면서 분데스리가 역사상 최장수 감독으로  이름을 남겼고 U-19팀 감독 및 수석코치 시절까지 포함하면 총 29년간 프라이부르크에 머물렀던 터줏대감이었다.

위기에 빠진 프리이부르크를 팀의 소방수로서 구하면서 1군 감독 경력을 시작했던 슈트라이히는 2012-13 시즌, 트레블을 이뤄낸 유프 하인케스를 제치고 키커 선정 올해의 감독상을 수상했고 2021-22 시즌에는 독일 올해의 감독과 VDV 분데스리가 시즌의 코치에 선정되며 독일 국적의 여러 명장들 사이에서도 뛰어난 성과를 냈으며 구단 규모가 작고 재정이 풍족하지 못한 프라이부르크로 여러 차례 중상위권에 오르며 존재감을 과시했다.

이런 화려한 개인 커리어와는 반대로 개인은 참 소박했는데 평소 화려한 슈퍼카가 아닌 자전거를 타고 경기장에 출근했고 2021년 1월에는 프라이부르크에 폭설이 왔는데 경기장 관리자들을 돕기 위해 경기장에 쌓인 눈들을 코치들과 함께 치우는 훈훈한 모습이 포착되기도 했으며 자신의 커리어에 큰 위기가 온 선수들을 구해주며 팀원들의 존경을 받았는데 특히 그리포는 경기 도중 그를 어깨로 밀친 프랑크푸르트의 다비드 아브라함에게 거칠게 항의하다가 프라이부르크의 아버지를 지켜냈다.

 

슈트라이히를 공격한 아브라함에게 항의하는 프라이부르크 선수단



프라이부르크의 알렉스 퍼거슨이자 프라이부르크 선수단의 아버지이자 스승이며 동시에 구단 관계자들과 팬의 친구였던 슈트라이히, 오늘은 그가 프라이부르크에서 보낸 커리어에 대해서 이야기해볼까 한다.

 

2. 무명 선수 출신의 지도자로 시작해 유소년 무대를 평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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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티안 슈트라이히는 선수 시절에 흔히 주목받지 못했던 하부리그의 흔한 축구선수였다. 1987-88 시즌 당시 2. 분데스리가에 있던 프라이부르크를 잠시 거치기도 했는데 한 시즌만에 팀을 떠났기에 당시에는 스쳐가는 인연으로 알았을 것이다. 그러다가 1994년에 중족골 부상으로 선수 생활을 지속할 수 없게 되자 은퇴했다. 그리고 1995년에 분데스리가에서 3위를 차지한 프라이부르크 U-19팀의 감독으로 부임한다.

 

 

선수시절의 슈트라이히는 슈투트가르트 키커스에서 선수생활을 했다.



U-19팀에 부임하면서 자신의 재능을 펼치기 시작한 슈트라이히는 유스팀에서 데니스 아오고, 외메르 토프락, 올리버 바우만, 조나탕 피트로이파, 다니엘 슈바브 등 뛰어난 잠재력을 가진 선수들을 발굴하고 육성한 슈트라이히는 주니어 DFB포칼에서 3회 우승했고 2008년에는 U-19 분데스리가에서도 우승하며 유소년 무대를 평정했다.

낭중지추라고 했던가 상술한 슈트라이히의 뛰어난 능력을 눈여겨본 신임 감독 로빈 두트는 2007-08 시즌을 앞두고 슈트라이히에게 프라이부르크 1군 팀의 수석코치를 겸직해 자신을 보좌하게 했다. 그는 두트를 훌륭하게 보좌하며 2008-09 시즌에는 프라이부르크의 2. 분데스리가 우승과 1부 리그 승격에 기여하면서도 유소년 팀에서도 꾸준하게 성적을 내며 자신의 가치를 높여갔다.

 

 

슈트라이히와 그를 알아봐 준 로빈 두트



두트를 보좌하며 많은 것을 배운 슈트라이히는 프라이부르크에서 좋은 시간을 보냈으나 2011-12 시즌을 앞두고 감독 유프 하인케스를 바이에른에 내준 레버쿠젠이 그의 대체자로 두트를 원했고 두트 역시 큰 물에서 놀기를 원했기에 지난 시즌 분데스리가 준우승 팀인 레버쿠젠으로 둥지를 옮겼다. 그리고 신임 감독으로 마르쿠스 조어크가 오자 슈트라이히는 그를 보좌했다.

하지만 마르쿠스 조어크는 최악의 부진으로 경질되었는데 조어크가 프라이부르크에서 기록한 성적은 17경기를 치르고도 승점 13점에 불과했고 팀 내 주포이자 분데스리가 득점왕 경쟁을 하던 파피스 뎀바 시세 역시 이러한 현실에 지쳐버리며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의 뉴캐슬 유나이티드로 팀을 떠났다. 이에 구단 수뇌부들은 슈트라이히에게 감독직을 맡긴다.

 

3. 분데스리가 정상급 감독으로 성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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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처음 지도자 생활을 한 이후 16년 만에 프라이부르크 1군 감독에 오른 슈트라이히는 감격할 새도 없이 바쁜 나날을 보내는데 겨울 휴식기 동안 팀을 빠르게 수습하고 자신의 1군 감독 데뷔 무대에서 아우크스부르크를 상대로 1-0으로 승리를 거뒀다. 그리고 후반기 17경기에서 7승 6무 4패라는 호성적을 거두고 잔류에 성공했으며 심지어 분데스리가 10경기 연속 무패행진을 거두기도 했다.

이 대단한 성과를 전반기 17경기에서 9골을 기록한 에이스 파피스 뎀바 시세 없이 이뤄냈는데 그의 대체자였던 말리의 공격수 가라 뎀벨레는 16경기에서 1골을 넣는 최악의 부진을 기록했지만 슈트라이히는 이에 굴하지 않고 팀에 다양한 공격패턴을 입히며 득점 루트의 다변화를 이뤄내 생존할 수 있었다.

 

시즌 도중 팀을 떠난 에이스 파피스 시세



2012-13 시즌, 프라이부르크는 마티아스 긴터, 다니엘 칼리주리와 같은 유소년 팀 출신 선수들이 기량을 만개했고 강등된 장크트 파울리의 에이스 공격수 막스 크루제를 영입하는 등 전력 보강에 성공했지만 그럼에도 세간에서는 여전히 프라이부르크는 중위권 미만의 성적을 거둘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슈트라이히와 프라이부르크는 이런 세간의 예상을 가볍게 비웃었는데 공격진의 결정력 부재로 매 경기 고전하긴 했지만 탄한 조직력과 견고한 수비력을 앞세운 슈트라이히의 프라이부르크는 모두의 예상을 뒤엎고 분데스리가 준우승이라는 성적을 거뒀다. 특히 수비조작력이 가히 일품이었는데 34경기에서 40실점만 내주며 바이에른 뮌헨과 레버쿠젠에 이어 분데스리가 최소 실점 3위를 기록했다. 이는 마츠 훔멜스와 네벤 수보티치 듀오를 앞세운 챔피언스리그 준우승의 보루시아 도르트문트가 내준 42실점보다도 적은 수치였다.

상술한 활약을 인정한 키커는 트레블 및 분데스리가 역대 최다 승점 신기록을 세운 유프 하인케스와 보루시아 도르트문트의 결승 진출을 이룬 클롭을 제치고 크리스티안 슈트라이히에게 올해의 감독상을 수상했다.

 

2013년에는 키커 주관 독일 올해의 감독을 수상한 슈트라이히

 

 

4. 강등의 아픔을 이겨내고 한 단계 더 도약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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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슈트라이히 체제의 프라이부르크 역시 어려운 순간도 있었다. 크루제와 칼리주리 같은 에이스 카드들은 각각 보루시아 묀헨글라트바흐와 볼프스부르크로 이적하고 그 선수들을 유스 선수와 무명 선수로 대체했지만 이번에는 간신히 잔류하는데 그쳤으며 2014-15 시즌에는 팀의 에이스이자 주전 골키퍼인 올리버 바우만마저 이적했고 그를 대체하지 못해 강등의 아픔을 경험하기도 했다.

강등으로 인해 주전 선수들 다수가 팀을 떠났지만 슈트라이히는 팀을 빠르게 수습했는데 바이에른 뮌헨에서 1군 생활을 한 경험이 있는 닐스 페테르센과 호펜하임 출신의 빈첸초 그리포를 데려와 공격진을 재편했고 바우만과 뷔어키가 떠난 골문에는 쇼블로프를 발굴했다. 그리고 이들의 활약으로 2부 리가 우승을 이뤄내며 다시 분데스리가로 올라왔고 2016-17 시즌에는 분데스리가 7위를 거두며 유로파 리그에 진출했다.

 

닐스 페테르센을 두고 프라이부르크 팬들은 "팀보다 위대한 선수는 없지만 그래도 당신은 거기에 가까웠다."라고 호평했다.



그리고 2021-22 시즌에는 완벽하게 부활에 성공하며 분데스리가 6위 및 DFB포칼 결승 진출이라는 쾌거를 이뤄냈다. 슈트라이히 개인의 전술적인 역량 역시 호평가를 받으며  VDV 분데스리가 올해의 감독에 선정되었고 연말에는 독일 올해의 감독에 선정되었다

 

 

2020-21 시즌 프라이부르크

 

 

이후 2022-23 시즌에도 챔피언스리그 진출권을 두고 경합하며 분데스리가 5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지만 프라이부르크를 상대로 4위 경쟁에서 이긴 우나이 시몬 체제의 우니온 베블린에 의해 묻혔다. 그래도 투헬의 바이에른 뮌헨을 DFB포칼에서 제압하는 좋은 모습도 보였다.

그러나 2023-24 시즌에는 유럽대항전 진출을 두고 치열한 경쟁을 펼쳤지만 여러 한계에 봉착하며 상승세를 이어나가지 못했다. 이에 슈트라이히는 시즌 종료 후 감독직 은퇴를 선언하며 프라이부르크에서의 지도자 커리어를 마무리한다.

 

5. 용병술의 귀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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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트라이히는 전술의 철학적인 측면에서 아리고 사키나 펩 과르디올라처럼 확고한 철학자는 아니었다. 오히려 그런 성향이 아니었기에 상황에 맞는 유연한 운영에 능해 3백 시스템과 4백 시스템을 팀 상황에 맞게 유연하게 사용하면서도 팀의 조직력을 빠르게 올리는데 능했다. 그리고 오랜 시간 유소년팀 감독을 맡았기에 유스 발굴에 뛰어났는데 이는 구단 사정이 열악한 프라이부르크와 잘 맞았다.

 

뛰어난 조직력을 바탕으로 한 디테일한 압박 체계



전술적인 부분에서도 부족하지 않지만 그의 진가를 하나만 뽑자면 적재적소의 용병술이다. 항상 선수단이 이탈해도 저평가받았던 선수나 존재감이 없는 선수들을 데려와 비싸게 팔린 전임자들을 완벽하게 대체하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 2021-22 시즌을 앞두고 밥티스타 산타마리아가 스타드 렌으로 이적했고 마인츠에서 임대한 골키퍼인 플로리안 뮐러는 임대에서 복귀해 슈투트가르트로 이적한 상황을 맞아서도 막시밀리안 에게슈타인, 마크 플레켄, 그리고 슐로터벡과 정우영을 앞세워 그들의 공백을 완벽하게 메워냈다.

 

토르난테 선정 슈트라이히 올스타 스쿼드



부록으로 슈트라이히의 프라이부르크 체제 베스트 일레븐을 선정해봤다. 슈트라이히는 이들 대부분을 팔고도 다른 대체자를 만들어냈을 정도로 뛰어난 용병술이었다.

마지막으로 슈트라이히는 선수단을 완벽하게 통솔하는 강력한 리더십으로도 유명한데 2019-20 시즌 11라운드 프랑크푸르트전 도중 프랑크푸르트의 수비수 아브라함이 슈트라이히를 공격해 어깨로 밀어서 넘어트렸다. 그때 프라이부르크의 선수들은 모두 슈트라이히를 위해 아브라함을 공격하려 했었고 그리포는 실제로 슈트라이히를 위해 아브라함을 폭행하기도 했다. 그러나 슈트라이히가 제지하자마자 일사불란하게 제 자리로 돌아갔던 일화가 있었을 정도로 인정과 카리스마를 겸비한 지휘관이기도 하다.

 

 

6. 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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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들에게 축구 역사상 최고의 감독을 묻는다면 알렉스 퍼거슨, 펩 과르디올라, 엘레니오 에레라나 리누스 미헬스, 그리고 주제 무리뉴 등 다양한 답이 나오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프라이부르크의 선수단과 팬들에게 이 질문을 던진다면 이들은 당연히 크리스티안 슈트라이히"라고 대답할 것이며 그 누구도 이를 비웃을 수 없다.

30년에 가까운 세월 동안 묵묵히 프라이부르크를 위해 헌신한 슈트라이히, 그는 이번 시즌을 끝으로 축구계를 떠나지만 프라이부르크의 팬들은 그가 프라이부르크에서 이뤄낸 많은 업적과 추억, 그리고 소박한 모습과 뛰어난 용병술과 같은 그에 대한 모든 것들을 잊지 못할 것이다.

프라이부르크의 아르센 뱅거이자 알렉스 퍼거슨, 프라이부르크의 푸스발 고트 크리스티안 슈트라이히, 그의 업적은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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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이부르크의 퍼거슨, 크리스티안 슈트라이히의 스토리

1. 서론 "이 클럽은 저에게는 인생과 같습니다. 저에게는 위대한 클럽이고 좋은 시간들을 보냈지만, 하지만 지금이 가장 작별하기 좋을 때라 생각합니다." - 크리스티안 슈트라이히 2023-24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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Ⅱ-Ⅱ. '이번 시즌을 끝으로 나갈 피올리에 대해서' 

- 임규진

 

I. 서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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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시즌은 지휘봉을 내려놓는 감독들이 유독 많다고 느낀다. 프라이부르크에 29년간 헌신한 슈트라이히가 축구계를 은퇴했고, 오랜 기간 리버풀을 이끌며 수렁에 빠진 클럽을 구해내며 리버풀의 전설이 된 위르겐 클롭도 리버풀 감독직을 내려놓았다. 챠비 에르난데스와 토마스 투헬은 경질과 번복을 거듭하다 결국 시즌이 종료된 후 모두 팀을 떠나기로 했고 2010년대 유벤투스의 전성기를 이끈 마시밀리아노 알레그리 역시 코파 이탈리아 결승에서 퇴장당하며 경질당했다.

여기에 다섯 시즌 동안 AC밀란을 이끌며 2021-22 시즌 스쿠데토를 차지하는 데 공을 세운 스테파노 피올리가 AC밀란을 떠난다는 소식이 기정사실화가 되었다. 혹자는 피올리를 형편없는 감독이라고 강도 높게 비판한다. 다만 피올리가 이런 평가를 받기에는 너무 가혹하다고 생각한다. AC밀란 역사 속 피올리는 분명 과보다 공이 더 많기 때문이다. 오늘 이 글에서는 그가 이전까지 걸어온 길과 AC밀란을 이끈 피올리의 행보에 대해 이야기를 하겠다.

 

 

II. AC밀란 부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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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한 소방수 감독의 커리어

 

 

스테파노 피올리. 그는 과거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땜빵, 소방수 감독이었다. 보통 세리에 A에서 중위권을 차지하던 팀들이 매번 성적 부진을 이유로 전임 감독을 경질하면 소방수로 피올리를 항상 선임하였다. 피올리가 이전까지 걸어온 커리어는 단기간에 성적을 내는 데 있어서 나름 준수했다. 하지만 장기간 팀을 운영하면 늘 경질이나 자진 사임으로 끝마쳤다.

 

 

볼로냐에서 팀을 맡던 피올리의 모습

 

 

피올리는 AC밀란 부임 전 가장 오랫동안 맡은 팀이 3년 동안 맡았던 볼로냐였을 정도로 감독 데뷔 이후로 한 시즌을 버티지 못하고 경질로 마무리하는 경우가 잦았다. 가장 오래 버틴 볼로냐에서도 마지막 시즌은 경질로 끝났다. 이후 라치오와 인테르, 피오렌티나를 맡았지만 역시 좋지 않은 결과로 감독직을 놓게 된다.

 

 

III. AC밀란 부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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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밀란 역사상 최악의 감독으로 평가 받게 된 지암파올로

 

 

2019-20 시즌 AC 밀란 감독이었던 지암파올로가 최악의 경기력을 연일 보이며 저조한 성적을 기록했다. 결국 구단은 최악의 성적을 기록하던 지암파올로에게 AC밀란 역사상 최단기간 경질이라는 불명예를 선사했다.

지암파올로를 경질하며 칼을 빼든 AC밀란은 반등이 필요했다. 그리고 그들은 피올리를 후임 감독으로 선택했다. 대다수의 밀란 팬들은피올리가 단순히 소방수로 왔다고 생각했었고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이 선택이AC밀란의 역사를 송두리째 바꾼다고 생각한 이는 아무도 없었다.

 

 

[3.1 스스로 성장한 19-20 시즌]

 

 


피올리 부임 후에도 성적은 여전히 좋지 않았다. 특히 아탈란타를 상대로 0-5으로 대패한 경기는 AC밀란 팬들에게 충격과 공포를 선사했다. 지암파올로 시절 경기력과 성적보다 더 좋지 않은 결과를 기록한 피올리는 아직까지 소방수에 만족할 만한 모습은 아니었다. 

 

 

 

그래도 팀의 마지막 스타플레이어였던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가 8년 만에 밀란으로 복귀하며 좋지 않던 팀의 분위기를 반전시키기 위한 초석을 다져가기 시작한다.

 

 

밀라노더비에서 맞은 충격적인 역전패

 


아직은 역부족인지 데르비 델라 마돈니나에서 2-0으로 앞서갔지만 4골을 연달아 내주며 패배한다. 전반전에는 충분히 잘 준비해 왔으나 경기 종료 10여 분을 남기고 단 1장의 교체 카드도 쓰지 않은 것과 전술의 변화 없이 후반전을 시작한 것이 패배의 요인으로 지적받았다.

 

 

AC 밀란과 접촉이 있었던 랄프 랑닉

 

 

이렇듯 좋지 않은 상황에 놓였던 피올리는 설상가상 랄프 랑닉이 AC 밀란 감독에 부임할 것이라는 루머까지 돌았다. 이대로 간다면 피올리는 이전처럼 소방수 역할만 하다 감독직을 내려와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였다.

 

 

시즌 초중반을 날렸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6위로 악착같이 올라온다.

 

 

그러나 풍전등화같던 피올리의 감독 인생이 송두리째 바뀌는 계기가 생겼으니 바로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리그가 중단됐던 것이다. 일단 피올리는 이 시기를 기회로 만들기 위해 자신과 팀에 변화를 주기 시작했다. 공격과 수비 모두 가담하던 케시에를 수비만 하도록 역할을 제한했고, 찰하놀루에게 프리롤 역할을 부여한다. 또한 자신의 전술에도 변화를 준 피올리는 AC밀란이라는 팀을세계에서 가장 공격적인 팀으로 만든다.

피올리가 AC밀란과 재계약할 수 있었던 조건은 챔피언스리그 진출이었다. 자신의 후임자로 랑닉이 올뻔한 상황 속에서 스스로 팀과 자신에게 변화를 주며, 시즌 말에 재계약을 하게 된다. 피올리는 재계약에 부응하듯 코로나 휴식기 이후로 패배 없이 시즌을 끝낸다. 하지만 6위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FFP 위반으로 UEFA는 유로파리그 진출권을 박탈한다.

 

 

[3.2 부활의 신호를 보인 20-21 시즌을 거쳐 완벽하게 부활한 21-22 시즌]

 

산드로 토날리는 이탈리아 내 최고의 유망주로 꼽혔었다.

 

유로파리그 진출권 박탈로 실망할 AC밀란이 아니었다. 오히려 밀란은 더욱 단단해지기 시작한다. 여름 이적시장에서 초특급 유망주였던 산드로 토날리를 영입하는 등 밀란 보드진은 피올리에게 적극적인 지원을 한다. 이에 보답하듯 피올리는 2020-21 시즌 개막 후에도 24경기 무패 행진을 달리게 된다. 이렇게 밀란은 전반기 1위를 달성했고, 밀란 팬들은 잠시나마 10년 만에 스쿠데토라는 꿈을 꾼다.

 

 

인테르는 20-21 시즌 세리에 A 1등을 하며, 스쿠데토를 들어올린다.

 

 

하지만 코로나 확진으로 결장하는 선수들이 나타나기 시작하고 부상으로 주전들이 대거 빠지면서 상승세가 꺾였다. 결국 라이벌 인테르에게 우승을 내주었지만 이들에겐 아직 챔피언스리그 경쟁이 남았었다. 결국 AC밀란은 마지막 라운드에서 아탈란타를 상대로 승리를 거두며 리그 2위로 8년 만에 챔피언스리그에 진출하는 경사를 누렸다.

 

 

11년 만에 스쿠데토를 들어올리는 AC밀란

 

 

길었던 암흑기를 겪은 AC밀란은 꿈에 그리던 챔피언스 리그 복귀라는 광명을 되찾았다. 비록 조별리그에서 탈락했지만, 오히려 AC밀란은 리그에 집중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 피올리의 전술에 맞는 선수를 영입하고 어린 선수들이 성장하면서 우승 경쟁까지 하는 팀으로 바뀐다. 이전 시즌에는 꿈만 꾸던 스쿠데토를 달성하게 되며, 11년만에 세리에 A 우승을 거둔다.

 

 

선수단의 조화가 잘 만들어진 시즌

 

 

밀란이 스쿠데토를 다시 차지할 수 있었던 요인은 무엇이었을까? 바로 즐라탄을 기점으로 키예르, 지루, 플로렌치와 같은 고참 선수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들은어린 선수들에게 좋은 귀감이 되었고, 이들 덕분에 선수단은 하나로 뭉치게 된다. 선수들을 믿고 끝까지 함께하며 덕장의 면모를 갖춘 피올리와 팀의 디렉터이자 팀 내 역사상 최고의 선수였던 파올로 말디니의 영향력까지 시너지 효과를 발휘하며 이뤄낸 우승이었다.

 

세리에 A 최고 감독상을 받는 피올리

 

이를 바탕으로 피올리는 세리에 A 최고 감독상을 받는다. 부상이 많은 시즌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오롯이 피올리 본인의 역량으로 AC밀란을 우승으로 이끌었다는 사실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소방수로 시작해 아무 기대조차 하지 않았던 피올리였지만 몰락한 명가인 AC밀란을 암흑기에서 완전히 부활시킨 명감독으로 다시 탄생한 순간이었다.

 

 

[3.3 오랜만에 복귀한 챔피언스리그 토너먼트, 그리고 내리막]

 

AC밀란의 마지막 챔피언스리그 우승

 

 

22-23 시즌에는, 디펜딩 챔피언의 위용은 사라지고 경기력이 좋지 않아 리그는 4위로 아쉬운 성적을 거뒀지만, 챔피언스리그에서는 오랜만에 유럽 강호 명성을 다시 되찾았던 시즌이었다. 마지막 우승 시즌인 06-07 시즌 이후로 처음 4강에 올라가는 쾌거를 달성했기에 이 또한 AC밀란이 다시 옛 명성에 맞는 성적에 한 걸음 더 나아갔다고 생각한다.

 

혹자는 대진운이 좋아 준결승에 진출했다고 하지만 첼시가 폼이 좋지 않았어도 불과 2년 전에 우승을 이뤄냈을 정도로 경험이 많았고 잘츠부르크와 디나모 자그레브 역시 전력은 약하지만 최근 UEFA 챔피언스리그 조별리그 단골손님이라 경험 자체는 AC 밀란보다 많았다. 16강에서 만난 토트넘은 케인과 손흥민이라는 정상급 공격 듀오가 있었으며 8강 나폴리는 해당 시즌 세리에 A에서 압도적인 퍼포먼스를 보였고 챔피언스리그에서도 리버풀과 프랑크푸르트를 완파한 강팀이었지만 그런 나폴리를 꺾고 준결승에 진출했다. 비록 인테르에게 패했지만 밀란 입장에선 큰 성공을 거둔 것이다.

 

 

갑작스러운 토날리의 뉴캐슬 이적

 

 

문제는 시즌 종료 후에 나왔다. 팀 내 정신적 지주인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가 은퇴했고, 시즌 초 신임 구단주이자 레드버드 캐피탈을 운영하는 게리 카디널이 AC밀란 그 자체라고 볼 수 있으며 실제로 리그 우승 과정에서 보이지 않는 곳에서 큰 공을 세운 파올로 말디니를 경질시키며 선수단과 팬들에게 큰 충격을 주더니 핵심 선수 산드로 토날리까지 뉴캐슬로 판매하며 팬들의 성난 민심에 기름을 부었다.

 

지난 시즌 스쿼드 내 선수들 몇몇이 이탈하자 레인더스, 로프터스치크, 풀리식 등을 영입하며 스쿼드를 두껍게 했다. 하지만 지난 시즌에 이어서 좋지 않은 경기력으로 챔피언스리그 조별리그에서 3위를 기록하며 조별리그에서 탈락해 유로파리그로 밀려났고 유로파리그에서 우승 후보로 뽑혔지만 예상과 달리 8강에서 한수 아래라고 평가받던 AS 로마한테 탈락을 했고, 리그 역시 준우승으로 시즌을 마무리했다. 말이 준우승이지 우승팀 인테르 밀란과 37라운드 기준 승점 차이가 19점까지 벌어졌다. 이에 책임을 진 피올리는 시즌이 끝난 뒤 팀을 떠나기로 합의했다.

 

IV. 피올리에게는 어떤 가치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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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올리는 자신의 철학이 강한 전략가보다는 선수들을 잘 품는 덕장 유형의 지휘관이다. 그리고 선수 육성에도 일가견이 있어 유망한 선수들을 보는 눈과 이들의 능력을 끌어올리는 능력이 탁월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AC 밀란 부임 이후 피올리는 자신의 능력까지 한층 더 끌어올리며, 감독으로서 한 단계 더 발전했다고 볼 수 있다.

 

그는 급한 불을 꺼야 하는 팀에 어울리는 소방수였다. 큰 요구사항 없이 있는 자원으로 팀을 이끌어왔다. 하지만 그것이 오래가진 않았으며, 장기적으로 전술적인 부분에서 큰 약점을 보였기 때문에 단순히 소방수 감독으로 있었던 것이다. 설상가상 AC밀란 부임 후 소방수 역할을 수행하지도 못했다. 장점 없이 단점만 보이며, 최악을 달리고 있었다.

하지만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리그가 중단됐던 시기 피올리는 철저하게 준비한다. 당시 가장 잘 나갔던 한지 플리크의 바이에른 뮌헨을 벤치마킹해서 팀을 꾸려나갔다. 선수들의 장단점을 제대로 파악하여 장점은 극대화하고 단점은 최대한 가리며 팀을 완전히 바꿨다. 재계약 조항에 있던 챔피언스리그 진출에는 실패했지만 스스로 자기 능력을 보여주며, 재계약을 이뤄냈다.

2020-21 시즌, 8년 만의 챔피언스리그 진출과 리그 2위, 2021-22 시즌 11년 만의 세리에 A 우승, 2022-23 시즌 챔피언스리그 4강 진출이라는 기록을 보여줬다. 비록 이번 시즌은 리그 2위로 마무리했고, 전술에서 그에게 많은 비난을 하지만 시즌이 지날수록 나쁘지 않은 성적을 꾸준하게 만들어냈다. 즉,성적은 최대한 낼 수 있는 감독이다. 

 

피올리는 자신이 가보지 못한 길을 가면서 팀과 함께 성장했고 성적은 보장한 감독이다. 물론 축구에서 승리하기 위해 좋은 전술이 필요한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전술이어도 온전히 수행할 수 있는 선수가 없다면 말짱 도루묵이다. 단순히 이름값이 있는 선수를 영입한다고 해서 그 전술에서 맡은 역할을 온전히 수행한다는 보장이 없다.

 

이번 시즌 밀란이 이와 같은 사례라고 볼 수 있다. 피올리의 전술에선 중원에서 케시에처럼 수비적인 역할이 가능한 선수가 필요했다. 그래서 중원 자원인 로프터스 치크, 레인더스, 무사를 영입하지만 누구도 중원에서 케시에만큼 역할을 잘 수행한 선수가 없다. 중원에서 볼 탈취에 실패하면 바로 수비진으로 이어지게 된다.

그러다 보니 중원에서는 공수 방면에서 맞지 않은 역할을 할 수밖에 없고, 이 또한 중원 삭제 전술이라며, 조롱 섞인 말들을 한다. 물론 감독이라면 전술적으로 해결을 해야 하는 부분이 분명히 있을 것이다. 하지만 영입하는 데 있어서 전술과 맞는 선수를 영입해야 한다는 바이다.

 

 

Ⅴ. 결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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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키이즘의 주인공 '아리고 사키'

 

혹자는'그를 보내고 다른 감독으로 대체하는 것이 낫다.'라는 말을 한다. 하지만 이것이 정말 신빙성이 있는 말인지 전문가의 생각을 들을 필요가 있다.

축구사의 한 획을 그은 인물이자 AC밀란의 레전드 감독인 아리고 사키는 피올리에 관한 인터뷰에서'그를 경질하면, 전술적으로 뛰어넘는 감독이 오지 않는 한 10년 전으로 돌아갈 것이다.'

"또한 그의 대체자로 로페테기, 콘세이상, 폰세카, 마르크 반 봄멜 등 많은 감독이 거론되지만, 그 누구도 피올리만큼 세리에에서의 경험도 없다. 우승을 원한다면 대체자로 언급되는 감독들보단 피올리 감독이 이끌어서 우승하는 것이 더 확률이 높다고 본다."라며 피올리에 관해 지지하는 것으로 입장을 표명하였다.

 

밀란이 우승을 했던 시즌을 되돌아보면, 피올리 감독 - 말디니 디렉터 - 엘리엇 구단주가 협력해 좋은 시너지 효과를 냈다. 하지만말디니가 쫓겨난 현재는 그렇지 않다. 단순히 피올리만의 잘못으로만 보는 것이 옳을까? 대중은 피올리에게 너무 가혹한 평가를 하지 않았나생각해본다.지난 다섯 시즌 동안 AC밀란을 이끌며 다시 스쿠데토를 가져온 피올리에게 행운이 깃들길 바란다는 말로 이 글을 마무리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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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시즌을 끝으로 나갈 피올리에 대해서

I. 서론 이번 시즌은 지휘봉을 내려놓는 감독들이 유독 많다고 느낀다. 프라이부르크에 29년간 헌신한 슈트라이히가 축구계를 은퇴했고, 오랜 기간 리버풀을 이끌며 수렁에 빠진 클럽을 구해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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Ⅱ-Ⅲ. '차비 에르난데스 - 합당한 경질인가?'

- 정원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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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7일, 바르셀로나의 이사회가 차비 에르난데스의 경질로 기울고 있다는 소식이 다양한 언론사들을 통해 보도되었다.

크라이프 - 과르디올라를 잇는 바르셀로나 브레인 선수 출신 명장의 계보라는 기대를 업고 바르셀로나에 도착한 차비는 지난 2022-23 시즌에 라 리가 트로피를 4년 만에 바르셀로나로 가져오긴 했으나 선수들의 기량과 변수에 지나치게 기대고 들쑥날쑥한 경기력을 보인다고 지적받았으며, 대륙 대항전에서 유독 약하다는 평가를 받아왔는데 이 때문에 팬들의 마음을 휘어잡진 못했다.

 
차비가 떠난다는 소식은 이걸로 두 번째다. 지난 비야레알전(1월 28일)에서 충격적인 역전패를 거둔 후에도 차비 감독은 성적부진을 이유로 바르셀로나를 위해 이번 시즌을 끝으로 사임할 것을 선언했었다. 이후 조안 라포르타 회장을 비롯한 이사회와 선수들은 적극적으로 나서서 차비의 사임을 번복시키기 위해 나섰으나 차비의 자존감이 떨어져 있었으며 사임에 대한 의지가 완고해 번복을 얻어낼 수 없었다.
 
그러나 사임 선언 이후 차비 감독은 13경기 연속 무패행진을 이어갔으며 챔피언스리그에서도 파리 생제르망을 상대로 훌륭한 경기력을 보였다.
 
팀이 조금씩 성과를 올리자 현지의 팬들과 이사회들은 다시 차비 감독을 설득하기 위해 나섰고 데쿠 스포츠 디렉터 이사가 차비에게 잔류할 것을 제안하자, 자존감이 오를 대로 올라와 있던 차비는 결국 바르셀로나 잔류를 택했다.
 

 
차비가 이런 성과를 거두는 데에 있어선 파우 쿠바르시의 발견과 등 부상으로 11월 중순부터 이탈한 테어슈테겐의 복귀가 결정적이었다.
 

 
테어슈테겐은 11월 중순부터 부상으로 이탈했는데, 그를 대체한 이냐키 페냐는 선방에 있어선 분명 재능이 보였으나, 테어슈테겐에 비해 수비진과의 의사소통과 볼 플레잉에 있어서 경험이 부족한 모습을 많이 보여줬다. 그리고 페냐의 이런 약점은 기존 수비진의 아라우호가 지니고 있던 약점과 겹쳐졌고 정상적인 경기 운영이 힘들 정도로 불안한 후방의 모습을 보여줬다.
 

 
본래 아라우호의 고질적인 단점인 공격전개 능력은 여름 이적시장에서 새롭게 영입한 이니고 마르티네스가 어느 정도 해소해 줄 것이라고 믿고 있었으나, 마르티네스마저 고질적인 유리몸 기질을 떨쳐내지 못하며 결장이 잦아지니 후방자원의 볼 전개 능력을 전제로 경기를 구상하는 바르셀로나의 경기력은 자연스레 바닥을 치게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차비에게 동아줄을 내려준 인재가 파우 쿠바르시다. 이번 시즌 첫 출전 때의 쿠바르시는 16살에 불과한 나이였으나 아라우호와 페냐의 아쉬운 볼 소유 능력과 전개 능력을 해소해 줄 만한 패스 앤 무브 능력을 탑재하고 있었으며 탁월한 구질의 전환 롱킥 능력 또한 갖추고 있었다.
 

 
쿠바르시는 꾸준히 경기에 모습을 드러내 괄목할만한 성장세를 보이며 스쿼드에 자리 잡았고, 이후 2월 초에 테어슈테겐이 부상에서 복귀하자 후방에서의 볼 플레잉과 질 높은 패스를 구사하는 쿠바르시와 테어슈테겐을 보유하게 된 차비와 바르셀로나는 이들의 볼 소유 능력과 패스 능력을 적극적으로 활용한 전환과 다이렉트 플레이를 통해 성과를 거두었다.
 

 
특히 이번 시즌 라민 야말과 페르민 로페스에 이어 쿠바르시라는 새로운 라 마시아 출신 재능을 발견한 것이 차비의 잔류 선택에 유리하게 작용했다고 볼 수 있다.
 

 
팬들과 구단이 생각하는 바르셀로나의 감독으로서 차비의 최대 장점은 바르셀로나의 철학과 시스템에 대한 이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번 시즌 차비는 바르셀로나의 시스템으로 대표적인 라 마시아의 선수들을 적극적으로 기용해서 야말과 로페스, 쿠바르시라는, 향후 10년 이상을 책임질 만한 재목을 얻었다.
 

 
이는 차비의 바르셀로나에 대한 높은 이해도를 팬들과 구단에게 보여준 대목이라고 할 수 있으며, 팬들과 구단에게 있어서 차비에 대한 기대와 믿음으로 작용했을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차비가 사임 번복을 밝힌 뒤 한 달도 채 되지 않아 다시 차비의 경질설이 불거지고 있다.
 

 
최근 보도되는 내용에 따르면 차비가 알메리아전 전의 인터뷰에서 '바르셀로나의 팬들은 바르셀로나의 재정이 사고 싶은 선수를 살 수 있었던 20년과는 달리 힘든 상황임을 알아야 하며, 경제적으로 레알 마드리드, 스페인, 유럽 등 가장 강력한 경쟁자와 경쟁하기 어렵다. 그래도 우리는 노력할 것'이라는 내용을 전했는데
 
사임 번복을 위한 라포르타와의 면담 때는 말하지 않은 스쿼드에 대한 불만을 기자들 앞에서 들어냈으며, 구단 내부의 재정에 대해 감독이 직접적으로 밝힌 것이 문제가 되었으며 특히, 레버까지 당기면서 차비를 지원하기 위해 애썼음에도 차비가 스쿼드에 대한 아쉬움을 내비친 것에 대해 수뇌부들이 크게 실망했다고 한다.
 

 
물론 내부 사정을 기자들 앞에서 드러낸 차비의 행동이 좋은 행동이라고 보기 힘든 것은 사실이다. 특히 구단에 대한 시스템에 대한 이해도 덕에 큰 지지를 받던 차비였기 때문에, 이런 시스템에서 벗어난 돌발행동은 차비의 위신에 있어서 큰 리스크를 동반한 행동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바르셀로나의 재정적인 상태가 이전에 비해 안 좋은 상황이며 경쟁할만한 체급의 상대들에 비해 재정적으로 열세에 있다는 것은 바르셀로나의 팬들 뿐만 아니라 유럽 축구를 즐기는 대부분의 팬들이 이미 인지하고 있던 내용이다. 오히려 전체적인 맥락상 차비가 구단의 재정에 대해 끄집어낸 것은 구단의 지원에 대한 불만을 표하기 위함이 아니라 구단을 위해 팬들에게 양해와 시간을 구하기 위했던 것으로 보인다.
 
때문에 필자는 다른 이유면 몰라도 이 인터뷰가 팬들로부터 차비의 경질을 정당화할만한 사유가 되지 못하며 지금 시점에서 차비를 경질시키기 위해선 더 확실한 명분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이해하기 힘든 경질 사유는 이들을 포함한 감독 후보들이 바르셀로나를 선택하는 데에 있어서 디메리트로 작용할 것이 뻔하며 이 시점에서 차비를 경질한다 해도 바르셀로나의 감독을 맡을 만한 인물을 찾고 데려오기가 힘들 것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차비가 사임 번복을 하기 전에 바르셀로나의 차기 감독으로 연결되던 한지 플릭과 B팀 감독 라파 마르케스를 생각해 봤을 때, 한지 플릭은 바르셀로나가 레이스에 다시 끼어들어 바이에른 뮌헨과 경쟁해야 하며차비에 비해 바르사 시스템에 대한 이해도가 부족하고,마르케스의 경우는 차비보다도 프로무대에서 지도자로서 이룬 성과와 기간이 부족한 상태다.
 

 
팬들은 '수뇌부의 말 잘 듣는 개'를 원하는 것이 아니다. 바르셀로나가 팬들의 분노를 부르고 싶지 않다면 더더욱 차비의 경질을 정당화시키기 위해선 확실한 명분을 찾아오거나 믿을만한 후계자를 선임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원문 링크

 

 

 

[부트발 잡담] 차비 에르난데스 - 합당한 경질인가?

지난 17일, 바르셀로나의 이사회가 차비 에르난데스의 경질로 기울고 있다는 소식이 다양한 언론사들을 통해 보도되었다.크라이프 - 과르디올라를 잇는 바르셀로나 브레인 선수 출신 명장의 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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Ⅱ-Ⅳ .'영웅에서 역적으로 떨어진 알레그리, 회생방안을 찾는 유벤투스'

- 강다민

 

 

1. 그의 화려했던 시절, 알레그리의 1기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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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리에 5회 연속 우승, 코파 이탈리아 4회 연속 우승 및 수페르코파 2회 우승으로 이탈리아 무대를 완벽하게 지배했고 축구종목 최고의 클럽 대항전 UEFA 챔피언스 리그에서는 14-15 시즌과 16-17 시즌, 2회 준우승을 이뤄내며 유럽에서도 경쟁력을 보여줬다. 유벤투스의 화려한 전성기를 이뤄낸 감독은 안토니오 콘테의 유산을 물려받아 클럽을 한층 더 업그레이드했던 마시밀리아노 알레그리였다.

알레그리의 부임 기간 동안 유벤투스는 2000년대 하반기 인테르의 세리에 A 무대 독주를 넘어서는 화려한 시기를 보냈다. 18-19 시즌은 그런 화려한 시기에 흠을 내는 시즌이었다. 18-19 시즌, 유벤투스는 겉으로 보기에는 리그에서도 순항 중이었고 챔피언스 리그에서도 아틀레티코 마드리드를 상대로 탈락 위기에 몰렸지만 호날두의 활약으로 뒤집고 올라가는 등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강팀답지 못한 지나치게 수동적인 전술이 팬들의 불만을 샀고 챔피언스 리그 8강에서 아약스 상대로 패배하여 탈락하며 이런 부분이 수면 위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결국 알레그리는 본인의 전술적 문제를 극복하지 못하고 결국 사직서를 내고 팀을 떠나 화려했던 유벤투스 시절은 종지부를 찍었다. 알레그리 사임 후에 비안코네리의 지휘봉을 잡은 마우리치오 사리는 본인의 좋지 못한 인성과 스타를 다루는 방법을 몰랐기에 선수단 장악에 실패하며 자신의 뜻을 펼치지 못했고 다음 감독인 팀의 레전드 안드레아 피를로는 지도자 경력이 전무한 수준인 초보 감독으로서의 문제로 인해 팀은 천천히 내리막길을 겪기 시작했고 결국 경질당했다.


 

2. 1기 시절의 영광은 없었던 알레그리 2기의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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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관이 명관이라고 유벤투스는 양밀란과 나폴리의 강세와 반대되는 이 난국을 타파하기 위해 2010년대에 좋은 기억이 있었던 알레그리를 선임했다. 팬들 또한 사리와 피를로로 인해 팀이 부진을 겪게 된 만큼 팀을 강호로 만든 알레그리의 복귀를 누구보다 반겼으며 알레그리의 1기 시절의 위상을 다시 보길 원했다.

수정 후: 그러나 알레그리 2기 시절은 그의 장점은 잊혀지고 어두운 일면만 부각되었는데 21-22 시즌, 유벤투스는 시즌 초반부터 주춤거리며 18위로 추락해 팬들에게 실망을 안겨주었다. 어찌저찌 다시 팀은 정상 궤도에 올랐으나 그의 주 문제점인 수동적인 전술에서 나오는 답답한 공격력으로 인해 득점력이 크게 약화되는 상황이 나오며 코파 이탈리아, 수페르코파 우승을 모두 놓치고 챔피언스 리그 진출에 의의를 두어야만 했다.

다음 시즌인 22-23 시즌에서는 유벤투스는 알레그리를 한번 더 지원했으나 18-19 시즌처럼 겉으로는 잘 돌아가는 것 같았으나 그는 바뀌는 것 없이 여전히 부족한 공격력으로 인해 저조한 득점력을 개선하지 못했으며 추가로 유벤투스는 장부 조작 사건으로 인해 승점 삭감 징계를 받아 7위로 시즌을 마감, 사건의 후폭풍으로 인해 팀의 수뇌부가 모두 쫓겨났기에 간신히 따낸 컨퍼런스 리그 진출권도 피오렌티나에게 넘길 수밖에 없었다.

23-24 시즌에는 기존의 챔피언스리그 진출 경쟁팀들인 로마, 라치오 그리고 나폴리가 정신을 못 차리고 헤매는 동안 3위를 간신히 수성해 챔피언스 리그를 진출에 성공했고 코파 이탈리아에서 오랜만에 우승하며 유종의 미를 거둔 줄 알았으나 알레그리 본인이 단장과 싸우고 기자에게 폭언한 사실이 드러나 구단으로부터 경질당했다. 알레그리의 2기 시절은 18-19 시즌의 문제점을 되풀이한 시즌이었으며 본인의 숨겨진 일면까지 드러나며 팬들이 알레그리의 1기 시절의 좋았던 시절을 잊게 만들어 주었다.

 

3. 알레그리 2기는 도대체 무엇인 문제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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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레그리의 2기의 가장 큰 문제점은 감독 본인이 시대에 뒤쳐진 전술을 채택한 부분인데 22-23 시즌 중반 3-5-2로 전환하기 이전까지 후방 수비형 미드필더를 빌드업의 주축으로 삼고 측면자원과 공격을 함께하는 전술을 활용했다. 하지만 알레그리는 이 전술을 활용하면서 전술에 문제가 생기면 변화를 줘야 했음에도 변화를 주지 않는 선택을 가져가고, 부족한 빌드업 체계와 과하게 넓은 간격으로 인해 미드필더들이 고립되는 문제가 발생하며 미드필더들의 과부하가 진행되었다. 수비 상황 시에는 두줄수비로 내려앉아 압박을 시도하지 않았으며 윙어가 두줄수비 상황시에 지나치게 내려와 역습을 노릴 상황 또한 효율적으로 이뤄지지 않았다.

그렇다고 공격이 수비보다 나은 것이 아니여서 유벤투스는 다양한 공격 패턴을 가져가는 것이 아닌 단조롭고 획일화된 패턴만 가져가며 상대팀이 유벤투스의 공격에 대응하기 쉽게 만들었는데 이 모든 복합적인 문제가 얽히고 얽혀 결국에는 선수 개인 기량에 의존하는 전술로 변모하고 말았다. 그래도 3-5-2 전술로 변경 후 승점을 차곡차곡 쌓은 알레그리였으나 실상은 변경 전 전술을 쓰리백으로 변화하고 선수들의 개인 기량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는 겉만 바뀌고 속은 바뀌지 않은 전술을 보여주었다.

결국 알레그리는 2기 시절 내내 자신의 단점으로 평가받던 공수주도권 문제에서  지나치게 수동적인 전술로 일관했으며 최적화된 빌드업 체계를 발견하지 못해 볼을 상대진영으로 운반하지 못했고 그래도 장점이었던 안정적인 공수 간격마저 잃어버리며 선수들의 개인 기량에 의존해야 하는 최악의 모습을 보여주며 감독으로 재기에 실패했다.

 

 

4. 유벤투스의 미래를 맡을 남자는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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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벤투스는 알레그리의 경질 이후 다음 감독을 물색중이다. 구단의 현재 최우선 타겟은 볼로냐의 돌풍을 일으킨 티아고 모타로 유벤투스의 수뇌부들은 그를 데려오기 위해 같은 생각을 가진 타팀들과 경쟁하고 있다.

만약 유벤투스가 티아고 모타를 영입한다면 티아고 모타의 입장에서는 최적인 상황으로 다가올 수도 있는데 그의 전술은 유동적인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실은 굉장히 체계적인 전술이기도 한데 센터백들과 미드필더들은 유동적인 움직임을 가져가면서도 다양한 패턴에 맞춰가며 뛰고 있다.

유벤투스의 선수들 중 미드필더는 모타의 전술에 최적화될 선수들이 많이 보이는데 대표적인 예시로 로카텔리와 라비오는 왕성한 활동량을 보여주었고 다닐루는 이미 쓰리백과 풀백 두 위치에서 뛰어 센터백과 풀백 두 포지션을 오가는 유동적인 모습을 보여줄 수 있다. 또한 모타가 유벤투스에 부임한다면 볼로냐와는 다른 재정적인 지원까지 더 들어올 수 있기에 모타에게 유벤투스는 매우 매력적인 팀으로 다가올 수 있다.

유벤투스의 재건은 다소 난이도가 높은 임무이기에 티아고 모타 본인이 성공할 수 있을진 미지수이지만 모타가 볼로냐에서 보여준 모습이라면 충분히 맡아낼 수 있을거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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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에서 역적으로 떨어진 알레그리, 회생방안을 찾는 유벤투스

1. 그의 화려했던 시절, 알레그리의 1기 시절 세리에 5회 연속 우승, 코파 이탈리아 4회 연속 우승 및 수페르코파 2회 우승으로 이탈리아 무대를 완벽하게 지배했고 축구종목 최고의 클럽 대항전 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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Ⅲ. 일반 칼럼 

 

Ⅲ-Ⅰ. [예비 축잘알을 위한 축구 규칙 알아보기] 도르트문트가 챔스 우승하면 분데스 6위도 챔스 가나요?

- 조장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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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잘알’은 ‘축구를 잘 아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축구팬에게 가장 명예로운 별명 중 하나이다. 그리고 축구 규칙을 잘 아는 것은 ‘축잘알’이 되기 위한 중요한 조건이다. 여러분이 축구 규칙을 잘 모르는 ‘예비 축잘알’이라면, 이 글을 읽고 완벽한 ‘축잘알’이 되길 바란다.

 

매년 이맘때면 유럽 축구계에서는 유럽대항전 진출 경쟁이 치열하게 일어난다. 축구팬들 역시 자신의 클럽의 유럽대항전 진출 가능성을 두고 여러 가지 경우의 수를 따지느라 골머리를 앓는다. 워낙 관련 규정이 복잡하다 보니 잘못된 정보에 헛된 희망을 품는 경우도 많다.

 

 

그동안 대표적으로 잘못 알려진 정보 중 하나는 ‘챔스 우승팀이 리그 성적으로 챔스 직행을 확보하면 해당 리그 5위팀이 챔스 진출할 수 있다’이다. 멀리 갈 것 없이 지난 시즌 맨시티가 PL과 챔스를 모두 우승했다고 PL 5위 리버풀도 챔스에 진출했나? 당연히 아니었다.

 

이러한 헛소문은 ‘챔스나 유로파 우승팀은 자국 리그 성적과 관계없이 다음 시즌의 챔스에 직행한다’는 규정이 와전된 것으로 보인다.

 

22/23시즌 라리가 13위 세비야는 유로파 우승을 차지해 챔스 직행을 확보했고, 라리가는 1~4위 팀과 유로파 우승팀 세비야까지 총 5팀을 23/24시즌 챔스에 내보낼 수 있었다. 라리가 5위에 유럽대항전 우승을 하지 못한 비야 레알에겐 당연히 아무 해당 사항이 없었다.

 

다음 시즌 UEFA가 챔스 본선 티켓을 32장에서 36장으로 늘릴 것을 예고하면서 경우의 수는 더욱 많아졌다. 챔스 직행 티켓이 5장으로 늘면서 동시에 이번 시즌 챔스 우승팀과 유로파 우승팀을 모두 배출할지도 모르는 분데스리가의 상황은 매우 복잡해 보인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또 상술한 ‘괴담’이 축구계를 떠돌고 있다. 이번엔 도르트문트가 챔스 우승을 하면 6위(리그 성적 기준 챔스 직행 티켓이 기존의 4위까지에서 1장이 늘었으므로) 프랑크푸르트가 챔스에 진출할 수 있다는 헛된 이야기들이 주로 나오고 있다.

 

하필 다음 시즌 챔스 포맷이 바뀌면서 속는 사람들이 더욱 늘고 있지만, 기존 규정과의 일관성만 고려해도 뭔가 이상함을 충분히 느낄 수 있고, 당연하게도 이 역시 사실이 아닌 헛소문이다.

 

5월 9일과 5월 17일에 올라온 UEFA 공홈 게시물에는 해당 규정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 명시되어 있다. 그러니까 UEFA가 추후 규정을 변경하지 않는다면 아래의 설명대로 다음 시즌의 챔스 진출권이 결정될 것이다.

 

 

먼저 5월 9일 자 글의 제목은 ‘유로파 리그 우승팀은 자동으로 2024/25 챔스 본선에 직행하나요?’이다. 해당 글의 내용을 간단히 번역 및 요약하겠다.

 

-이번 시즌의 유로파 리그 우승팀은 2024/25 챔스에 직행하는 것이 사실이다.

 

-만약 유로파 리그 우승팀이 이미 자국 리그 성적으로 챔스 직행을 확보했을 경우, 챔스 예선에 참가한 모든 팀들 중 가장 클럽 계수가 높은 팀이 챔스 직행을 확보하게 된다. 단 해당 팀은 반드시 자국 리그 우승팀이거나, 자국 리그에서 더 높은 순위를 기록한 모든 팀들이 챔스 직행을 확보한 상황이어야 하며, 그렇지 않을 경우 그다음으로 클럽 계수가 높은 팀에게 직행 티켓이 양도된다.

 

즉 분데스리가 6위를 기록해 챔스 예선에 진출하지 못한 프랑크푸르트에게는 전혀 해당 사항이 없는 내용이며, 레버쿠젠의 유로파 리그 우승과 프랑크푸르트의 챔스 진출에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5월 17일 자 게시물의 제목은 ‘만약 챔스 우승팀이 자국 리그 성적으로도 챔스 직행을 확보했다면 어떻게 되나요?’이다. 해당 게시물에는 아래의 내용이 명시되어 있다.

 

 

-만약 챔스 우승팀이 자국 리그 성적으로도 챔스 직행을 확보했을 경우, 자국 리그 우승으로 챔스 예선에 진출한 팀들, 즉 UEFA 리그 랭킹 11위에서 55위 사이 리그의 우승팀들 중 클럽 계수가 가장 높은 팀이 챔스 직행을 확보하게 된다. 현재의 상황이 유지된다면 우크라이나 리그의 선두인 샤흐타르 도네츠크가 이 티켓을 확보할 것이다.

 

분데스리가는 UEFA 리그 랭킹 11위에서 55위 사이에 해당하지 않고, 프랑크푸르트는 리그 우승팀도 아니고, 마찬가지로 챔스 예선에 진출하지도 않았으니 이번에도 해당 사항이 없다. 도르트문트의 챔스 우승과 프랑크푸르트의 챔스 직행은 무관하다.

 

종합하자면, 레버쿠젠과 도르트문트가 유럽대항전 결승에서 거두는 성적과 관계없이, 분데스리가 6위 프랑크푸르트는 ‘확실히’ 2024/25시즌 유로파 리그에 나가게 될 것이다.

 

애초에 대한민국 대부분의 해외축구 팬들이 응원하는 4대 리그(PL, 라리가, 세리에, 분데스)의 경우 UEFA 리그 랭킹에서 4위 밖으로 잘 밀려나지 않아 챔스에 직행하는 팀만 있고, 챔스 예선에 나가는 팀은 없기 때문에 이 규정은 거의 해당 사항이 없다.

 

이번 건을 두고 냉정하게 말했을 때, 축구를 오래 본 사람이라면 이런 규정은 명확하게 숙지하고 있어야 한다. 부디 여러분이 이번 글을 통해서라도 이 규정을 명확하게 숙지하고, 더는 헛된 고민이나 희망고문에 빠지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

 

 

 

원문 링크

 

 

[예비 축잘알을 위한 축구 규칙 알아보기] 도르트문트가 챔스 우승하면 분데스 6위도 챔스 가나

‘축잘알’은 ‘축구를 잘 아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축구팬에게 가장 명예로운 별명 중 하나이다. 그리고 축구 규칙을 잘 아는 것은 ‘축잘알’이 되기 위한 중요한 조건이다. 여러분이 축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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Ⅲ-Ⅱ. '낡은 혁명의 앞길은 어디에서'

- 최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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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흥망성쇠는 결국 비전의 유무에서 결정되고 이는 축구역사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알렉스 퍼거슨. 축구 역사상 최고의 명장 중 한 명으로 언제나 손꼽힌다. 그의 가장 큰 장점은 현대축구의 판세를 정확히 읽어내서 30년에 가까운 세월동안 멘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앞길을 제시해 준 전술적 통찰력, 비전의 제시 능력이었다.

 

 

파비오 카펠로. 전성기였던 1990대에는 알렉스 퍼거슨과 어깨를 나란히 했던 명장이었지만 그는 전술적 완고함으로 인해 2000년대 중반 이후부터 서서히 저무는 해가 되고 말았다.

 

 

빈틈이 없어보이던 무적의 전술도 결국에는 항상 파훼법이 나왔었고, 그에 따라 축구계는 항상 변화를 거듭해왔다.

나는 두 줄 수비가 위대한 전술의 혁명이라고 생각하지만,
그것도 이제 10년이 훨씬 넘게 지났다.

이제 두 줄 수비는 속속들이 파훼법이 나와 새로운 활로를 모색하지 못하면 사장될지도 모르는 위기를 맞고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효용가치는 사라진 것인가?

그렇지는 않다. 두 줄 수비의 근본은 좁은 간격의 4-4-2로서, 아직까지 현대축구의 기본 대형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축구의 포지션은 언제나 바뀔 수 있고, 각자가 위치한 역할의 플레이를 하는 것이 현대축구의 전술적 기본기, 포지션 플레이다.

팀마다의 약간의 차이는 있겠지만, 4-4-2라는 공수의 밸런스가 잡힌 포지션은 수비에서 공격으로 전환시 유리한 포지션임은 부인하기 어렵다.

또한 수비를 등한시하는 우를 범할 수는 없기에, 여전히 인간요새는 유용한 수비전술이기도 하다. 파훼법이 항상, 100% 통할수도 없는 노릇이고 말이다.

두 줄 수비의 기본이 되는 4-4-2포메이션. 수비에 성공하면 언제나 반격에 나설수 있는 태세를 갖춘 포메이션이다.

 



그렇다면 어디로 나아가야 하는가?

지금, 2024년 현재의 흐름으로 볼 때, 두 줄 수비를 메인으로 써서 우승을 하는것은 사실상 불가능이라고 봐야할 듯하다.

수비를 메인으로 두는 것은 그만큼 공격력이 약하다는 반증이고, 결국 승점 3점은 공격에서 골을 넣어야 결판을 낼 수 있기에 '우승은 쉽지 않다'라는 것이 필자의 의견이다.


번리 fc의 션 다이치 전 감독. 그 역시 4-4-2를 메인으로 활용하여 번리 fc를 유로파리그 까지 진출시킨 훌륭한 감독이지만 epl에서 훌륭하다고 볼 수 없는 번리 공격진의 한계를 극복하지는 못했다.

 


아이러니 하게도, 반대로 수비를 등한시하는 팀 또한 우승을 하기에는 어렵다. 부족한 실력에 상대와의 몸싸움, 경합을 주저하는 수비들을 보면서 공격수들은 우리가 반드시 득점을 해야한다라는 심리적인 압박에 짓눌리면, 이는 본래의 기량을 펴지 못하고 패배하는 복선으로 작용할 수 있다.

 

사진은 1954년 월드컵 때 단연 돋보이는 팀은 매직 마자르 군단 헝가리 대표팀이었다. 대한민국전 9대0 승리를 시작으로 5경기에서 28골을 몰아치는 괴랄할 정도의 공격력을 보유한 팀이었지만 서독과의 결승전에서 한 치의 모자란 수비가 결국 헝가리를 우승이 아닌 준우승으로 끌어내리고 말았다.

 

 

사진은 1998년 월드컵에서 마르셀로 살라스와 사진 속 주인공 이반 사모라노는 칠레 역사상 최강의 투톱을 이뤘으며, 공격진에서는 한 손에 꼽힐 수 있는 파괴력을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매 경기 실점을 하던 칠레의 수비진은 결국 16강전 브라질과의 경기에서 4골을 실점하며 4대1로 패배하고 말았다.


그렇기에 두 줄 수비는 현대축구에서 수비의 기본전술이자, 우승을 하기위해서는 팀단위로 두 줄 수비 사용법을 숙지해야하는, 현대 축구의 수비 메인 전술로 자리잡는 것이 올바르다 라고 할 수 있겠다.

분명히 150년의 축구 역사상 수많은 수비 전술이 있었고
큰 임팩트를 남긴 수비전술 또한 분명히 있었다.

그러나 이만큼 많은 팀들이 사용하는, 간단한 원리의 수비 전술은 유래를 찾기 힘들다.

축구는 하나의 생물체이며 예술이자 전쟁의 영역이라서 언제고 틀은 바뀔 수 있다. 설령 그렇기에, 이 위대한 방패가 언젠가 종언을 고한다 해도, 루브르 박물관의 모나리자처럼 두고두고 회자될 가치가 충분하다는 말을 마지막으로, 이만 길었던 두 줄 수비 시리즈의 마지막을 정리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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낡은 혁명의 앞길은 어디에서(두 줄 수비 시리즈 그 마지막 이야기)

지난 6편의 시리즈를 통해서 두 줄 수비에 대해서 자세히 다뤄보았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두 줄 수비의 파훼법에 대해서 조금 더 자세히 다뤄보고 싶었지만 필자보다 이 부분에 관해서 더 훌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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Ⅲ-. '축구 역사상 최고의 레프트백 탑 10'

- 박수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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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위 안토니오 카브리니

 


생년월일: 1957년 10월 8일
국적: 이탈리아
신체조건: 키 178cm / 몸무게 72kg
주 소속팀: 유벤투스 FC

'아름다운 안토니오'

잘생긴 외모로 인해 아름다운 안토니오라 불렸던 선수로 1980년대 상반기를 빛낸 레프트백으로 윙어가 연상될 정도로 빠른 스피드와 정확한 크로스, 왕성한 활동량으로 왼쪽 측면을 지배했으며 이는 트라파토니의 조나 미스타를 효과적으로 구현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유벤투스에서 전성기를 보내며 비안코네리 군단의 세리에 A 6회 우승, 1982-83 시즌 유러피언 컵을 포함해 3대 유럽 대항전을 모두 우승한 진기록을 보유하고 있는 카브리니는 개인으로도 옹즈 몽디알이 뽑은 유럽 베스트 일레븐에 3회, 구에린 스포르티보가 선정한 세계 베스트 일레븐에 2회 선정되며 당대 수위급 레프트백으로 인정받았다.

아주리에서도 어린 시절부터 맹활약을 펼쳤는데 1978 아르헨티나 월드컵에서 신인상을 수상하면서 대중들에게 자신의 이름을 알려 발롱도르 투표에서 13위에 올랐으며 1982 스페인 월드컵에서는 아주리의 통산 세 번째 월드컵 우승에 크게 기여했다.



9위 한스페터 브리겔

 


생년월일: 1955년 10월 11일
국적: 독일
신체조건: 키 188cm / 몸무게 87kg
주 소속팀: FC 카이저슬라우테른

'팔츠의 증기롤러'

신체능력과 축구지능을 겸비한 선수로 188cm의 89kg라는 거대한 체격은 물론 축구를 시작하기 전 육상에서도 큰 두각을 나타냈던 선수라 운동 능력에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했으며 이러한 우수한 피지컬을 앞세운 맨 마킹 능력이 뛰어났는데 공격적인 부분에서도 양발을 모두 잘 썼고 특히 중거리 슈팅이 대단했으며 축구 지능도 뛰어나 필드 내에서 모든 포지션을 소화할 수 있었다.

카이저슬라우테른에서 데뷔해 1978-79 시즌에 확고한 주전으로 도약해 1978-79 시즌부터 1981-82 시즌까지 붉은 악마 군단을 네 시즌 연속으로 분데스리가 4위 안에 들며 상위권으로 올렸고 DFB포칼 결승에도 2회 진출하는 데 큰 공을 세워 브리겔 개인도 분데스리가 시즌 베스트 일레븐에 4회 연속으로 선정되었으며 1980-81 시즌에는 키커 랑리스테 평가에서 월드클래스 등급을 받았다.

엘라스 베로나에서는 중앙 미드필더와 수비형 미드필더도 활약하며 전성기를 누렸는데 왕성한 활동량을 활용한 전진성을 앞세워 약체로 평가받던 팀을 우승시키는데 큰 공을 세워 1985 발롱도르 8위에 올랐고 독일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했으며 말년에는 삼프도리아에서 1987-88 시즌 코파 이탈리아 우승을 이뤄냈다. 그리고 브리겔도 세 팀에 머물면서 개인 통산 옹즈 몽디알 선정 유럽 베스트 일레븐에 3회 선정되었다.

브리겔의 디 만샤프트에서도 자신의 다재다능을 유감없이 발휘했는데 레프트백 시절에는 UEFA 유로 1980 우승에 기여하며 대회 올스타 팀에 선정되었고 1982 스페인 월드컵에서도 준우승을 이뤄냈고 1986 멕시코 월드컵에서는 안드레아스 브레메에게 레프트백 자리를 내주고 스토퍼와 수비형 미드필더로 활약하며 조국을 재차 결승행에 올렸으나 마라도나를 막지 못해 우승컵을 들지는 못했다.

 


8위 주니오르

 


생년월일: 1954년 6월 29일
국적: 브라질
신체조건: 키 172cm / 몸무게 69kg
주 소속팀: 플라멩구

'헬멧머리의 마에스트로'

1980년대 최고의 레프트백 중 한 명으로 화려하면서도 빠른 드리블 돌파와 웬만한 공격형 미드필더 수준의 볼 컨트롤 능력과 측면에서 중앙으로 침투해 플레이메이킹을 하며 킬 패스를 뿌리며 팀 공격을 주도하면서도 비슷한 유형의 후배 마르셀루와는 다르게 수비적으로 빈틈이 없었다고 평가받았다.

플라멩구와 토리노에서 활약한 주니오르는 플라멩구의 구단 통산 최다 출전자에 랭크된 주니오르는 브라질 전국리그 4회 우승과 1981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우승에 이어 인터콘티넨탈컵에서 붉은 제국 리버풀을 상대로 3-0 완승을 거두었는데 이 경기에서 주니오르는 유럽 정상급 라이트백 필 닐을 농락하며 경기를 자신의 것으로 만든 활약을 보여줘 남아메리카 올해의 선수 3위에 올랐다.

 

토리노 이적 이후에는 수비형 미드필더로 보직을 변경해서도 세리에 A 올해의 선수를 수상할 정도로 우수한 실력을 보여줬고 브라질로 돌아간 뒤인 1992년에는 38세의 나이에도 브라질 전국 리그 올해의 선수를 수상하며 롱런했다.

셀레상에서는 1982년에 이름을 날렸던 황금의 사중주를 보좌하며 활약했는데 세계 최고의 팀으로 수식되었으나 1982 스페인 월드컵과 1986 멕시코 월드컵에서 모두 준결승 진출에도 실패하며 부진한 성적을 낸 아쉬움이 있지만 1982 스페인 월드컵 올스타 팀과 1982년 남아메리카 올해의 선수 5위에 오르는 영광을 누리기도 했다.

 


7위 칼하인츠 슈넬링어

 


생년월일: 1939년 3월 31일
국적: 독일
신체조건: 키 180cm / 몸무게 77kg
주 소속팀: AC 밀란

'폭스바겐'

1960년대 유럽 정상급 수비수로 이름을 날렸고 우수한 체력과 빠른 기동력을 활용한 왕성한 활동량을 보여주며 상대의 공격을 틀어막아 폭스바겐이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쾰른과 AC 밀란에서 전성기를 보냈는데 쾰른에서는 1962 독일 챔피언쉽 우승에 큰 공을 세워 발롱도르 투표에서 3위에 랭크되어 포디움에 올랐으며 AC 밀란에서는 리그 우승 1회, 코파 이탈리아 우승 3회는 물론 1967-68 시즌 유러피언 컵 위너스컵 우승과 1968-69 시즌 유러피언 컵 우승을 이뤄내기도 했는데 그 과정에서 아약스의 에이스였던 요한 크루이프를 완벽하게 막아냈다.

디 만샤프트에서도 핵심 수비수로 활약한 슈넬링어는 1958 스웨덴 월드컵부터 1970 멕시코 월드컵까지 활약했으며 첫 번째 대회를 제외하고는 모두 주전으로 활약했는데 1962년 칠레 월드컵에선 뛰어난 활약으로 대회 베스트 일레븐에 들었으며 1966 잉글랜드 월드컵에서는 준우승, 1970 멕시코 월드컵에서는 3위라는 성적을 이뤄내는데 큰 공을 새운다.

키커 랑리스테 평가에서 월드클래스 등급을 8회나 받는 등 대체로 우수한 활약을 보여줬지만 1966 잉글랜드 월드컵에서는 자주 심판을 속이며 비매너 플레이를 자주 벌여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했으며 1970 멕시코 월드컵 준결승전에서는 이탈리아를 상대로 동점골을 득점해 승부를 연장으로 끌고 가자 이탈리아 선수들에게 이탈리아로 돌아올 생각은 하지 말라는 협박을 듣기도 했다.

 

 

6위 안드레아스 브레메

 


생년월일: 1960년 11월 9일
국적: 독일
신체조건: 키 176cm / 몸무게 77kg
주 소속팀: 인테르 밀란

'초능력자'

1980년대 하반기 세계 최고의 레프트백이자 독일 축구 역사상 최고의 세트피스 키커이자 양발잡이로 뛰어난 패싱력을 활용해 대표팀의 빌드업 시작점 역할을 했던 미래형 윙백이었으며 프리킥과 코너킥에 능해 팀의 공격을 지원했다.

카이저슬라우테른과 바이에른 뮌헨, 인테르 밀란에서 전성기를 누린 브레메는 바이에른과 인테르, 카이저슬라우테른에서 모두 리그 우승을 이뤄내는 기염을 토했다. 그리고 바이에른 뮌헨에서는 1986-87 시즌 유러피언 컵 준우승을 이뤄냈고 인테르에서는 1990-91 시즌 UEFA컵 우승을 이뤄냈으며 카이저슬라우테른에서는 포칼 우승을 이뤄냈다.

디 만샤프트 소속으로는 각각 세 번의 월드컵과 유로에 참가한 브레메는 1990 이탈리아 월드컵에서는 결승전에서 페널티 킥 결승골을 넣고 월드컵 우승을 이루고 대회 베스트 일레븐에 들었음은 물론 소파스코어 기준 대회 평점 2위를 기록하는 등 축구를 통달한 모습을 보였다. 그리고 UEFA 유로 1984와 UEFA 유로 1992에서도 우승을 하지는 못했지만 브레메 개인의 활약은 대단해 대회 올스타 팀에 선정되었다.

브레메는 개인적으로도 많은 영광을 누렸는데 분데스리가에 머문 기간에는 키커지 선정 분데스리가 시즌 베스트 일레븐에 3회 선정, 1988-89 시즌에는 인테르 올해의 선수와 세리에 A 평점왕인 구에린 도르를 수상했으며 1990 이탈리아 월드컵에서의 활약으로 발롱도르 포디움에 드는 영예를 누렸다.

 


5위 뤼트 크롤

 


생년월일: 1949년 3월 24일
국적: 네덜란드
신체조건: 키 184cm / 몸무게 74kg
주 소속팀: AFC 아약스

'정예병'

1970년대 아약스와 오렌지 군단을 이끌던 레프트 백으로 세련된 수비 능력과 준수한 볼 테크닉, 강력한 슈팅력을 모두 겸비했으며 리베로에서도 훌륭한 모습을 보여 당대 최고의 수비수 중 하나로 통했다.

네덜란드의 아약스에서 전성기를 맞은 크롤은 '신의 아들들'의 일원으로 에레데비시에 6회 우승, KNVB 컵 4회 우승을 이뤄냈고 유럽 무대에서도 유러피언 컵 3연패를 이뤄내며 '신의 아들들'과 함께 구단의 황금기를 누렸다. 북미 무대에 다녀온 뒤 나폴리에서도 4년 동안 활약했는데 비록 우승 트로피는 들지 못했지만 1981년에 옹즈 드 옹즈에 선정되었으며 이탈리아 내에서도 세리에 A 최우수 수비수상을 수상했고 세리에 A 평점왕인 구에린 도르를 수상했다.

네덜란드 대표팀에서도 두 번의 유로 대회 본선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줬으며 1974년 서독 월드컵과 1978년 아르헨티나 월드컵에서 모두 결승에 올랐지만 아쉽게 준우승에 그쳤으며 크롤 개인도 1974 월드컵과 유로 1976, 그리고 1978 월드컵에서 모두 대회 올스타 팀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으며 특히 리베로로 출전한 1978 아르헨티나 월드컵에서의 활약을 바탕으로 발롱도르 투표에서는 6위를 기록했으며 1979년에는 발롱도르 포디움에 입성했다.



4위 니우통 산투스

 


생년월일: 1925년 5월 16일
국적: 브라질
신체조건: 키 184cm / 몸무게 68kg
주 소속팀: 보타포구

'축구 백과사전'

20세기 최고의 레프트백 중 한 명으로 인정받는 선수였으며 축구사에서 측면 수비수의 오버래핑을 처음으로 정립한 선수로 알려졌다. 공격 기술부터 수비 기술까지 다재다능해서 백과사전으로 불렸다.

선수 생활을 오직 보타포구에서만 보냈으며 구단 통산 최다 출전자인 니우통 산투스는 영광의 팀이라 불리던 구단 역사상 최고의 황금기를 이끌며 캄페오나투 카리오카 4회 우승 및 1962년 6관왕과 같은 성과를 냈지만 펠레의 산투스에게 밀려 전국리그 우승은 아쉽게 달성하지 못했다.

셀레상에서도 백업 멤버로 1949 코파 아메리카 우승을 경험한 것을 시작으로 1950 브라질 월드컵의 마라카냥의 비극을 경험하기도 했으나 새옹지마라고 주전 멤버가 아닌 덕분에 이후에도 자주 기용되었고 펠레, 가린샤 등과 함께 브라질 대표팀의 최전성기를 누리며 두 번의 월드컵에서 우승하는데 크게 기여했다. 니우통 산투스 개인도 1958 스웨덴 월드컵에서는 대회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었다.



3위 호베르투 카를루스

 


생년월일: 1973년 4월 10일
국적: 브라질
신체조건: 키 168cm / 몸무게 73kg
주 소속팀: 레알 마드리드

'UFO 슈터'

21세기를 대표하는 공격형 레프트백으로 탄환인간이라 불렸을 정도로 엄청난 지구력과 스피드를 겸비했으며 거침없는 오버래핑과 단단한 몸을 이용한 대인 수비, 그리고 악마의 왼발로 불리는 강력한 왼발 킥력도 가지고 있었다.

파우메이라스와 레알 마드리드에서 전성기를 누린 호베르투 카를루스는 파우메이라스에서는 브라질 세리 A 2연패를 이뤄냈고 레알 마드리드에서는 라리가 4회 우승과 챔피언스리그 3회 우승을 이끌어냈음은 물론 카를루스 개인도 ESM 올해의 팀에 7회나 선정되었을 정도로 꾸준하게 활약했고 UEFA 올해의 수비수에도 2회 선정, 발롱도르 투표에서 10위 안에 3회 선정되었음은 물론 2002년에는 개인 통산 최고 순위인 2위에 오르기도 하는 등 높은 고점도 동시에 보여줬다.

셀레상에서도 월드컵 3회 출전, 코파 아메리카 4회, 그리고 컨페드컵 1회에 출전했으며 두 번의 월드컵 베스트 일레븐에 올랐으며 두 번의 코파 아메리카를 우승했다. 특히 2002 한일월드컵에서는 팀을 우승으로 이끌며 대회 올스타 팀에 들었으며 발롱도르 투표에서 2위에 올랐으며 1997년 컨페드컵에서는 귀신같은 궤적의 프리킥을 날려 득점했는데 그 슈팅의 궤적이 너무나도 경이로워 UFO 슛이라 불렸다.



2위 지아친토 파케티

 


생년월일: 1942년 7월 18일
국적: 이탈리아
신체조건: 키 191cm / 몸무게 82kg
주 소속팀: 인테르 밀란

'진격의 거인'

인테르와 아주리의 위대한 캡틴이자 유럽 최초로 오버래핑을 시도하며 카테나치오의 매서운 역습을 상징하는 선수였다. 빠른 스피드와 탄탄한 기본기를 활용해 공격에 적극 가담하며 상대 수비진을 교란했으며 강력한 피지컬을 앞세운 대인 수비에도 능했다.

선수생활을 오직 인테르에서만 보낸 원 클럽맨 파케티는 세리에 A 4회 우승과 코파 이탈리아 1회 우승, 그리고 유러피언 컵과 인터콘티넨탈컵 2연패를 이뤄내며 그란데 인테르의 시대를 이뤄낸 위대한 레프트백이다.

아주리에서는 첫 메이저 대회인 1966 잉글랜드 월드컵에서는 소련과 북한에게 패해 조기 탈락하는 굴욕을 겪었지만 유로 1968에서는 주장이자 공격의 시발점 역할을 맡아 우승을 이뤄냈으며 1970 멕시코 월드컵에서도 개최국 멕시코와 난적 서독을 이기고 결승에 진출했다. 언급한 두 대회에서 모두 대회 베스트 일레븐에 들었다.

파케티 개인도 월드 사커지 선정 세계 베스트 일레븐에 6회 선정되었으며 발롱도르 투표에서도 5위 안에 두 번 들었으며 1965년에는 개인 통산 최고 순위인 2위에 오르며 포디움에 들었다.



1위 파올로 말디니

 

 

생년월일: 1968년 6월 26일
국적: 이탈리아
신체조건: 키 186cm / 몸무게 85kg
주 소속팀: AC 밀란

'Cuore di Drago'

AC 밀란과 아주리의 위대한 캡틴이자 축구 역사상 최고의 레프트백 중 한 명으로 빠른 스피드와 세밀한 볼 컨트롤, 우수한 피지컬 능력과 교묘한 대인 수비를 모두 겸비한 완벽한 풀백이자 센터백이었다.

AC 밀란에서 세리에 A 7회 우승과 챔피언스리그 5회 우승을 포함해 밀란에서만 스물다섯 개의 우승컵을 들었으며 특히 1993-94 시즌 챔피언스리그 결승에서 센터백으로 출전해 호마리우와 스토이치코프를 가볍게 무력화시킨 그의 수비력은 관중들을 경악하게하며 1993-94 시즌 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전 맨 오브 더 매치에 선정된다.

아주리에서도 큰 족적을 남겼는데 유로 1988부터 2002 한일 월드컵까지 일곱 번의 메이저대회에 참가해 월드컵에서 두 번, 유로에서 세 번 베스트 일레븐에 드는 우수한 활약을 펼쳤고 바레시, 베르고미와 함께 1990 이탈리아 월드컵에서는 최장시간 무실점 기록을 세웠으며 1994년 미국 월드컵에서도 레프트백과 센터백을 오가며 혼신의 수비를 했으며 결승전에서도 바레시와 짝을 이뤄 호마리우와 베베투를 괴롭히며 승부차기 끝에 팀이 패했음에도 결승전 맨 오브 더 매치에 오르는 활약을 보여줬지만 그의 대표팀 마지막은 초라했는데 이천수에게 발로 머리를 가격당한것도 모자라 심판이 그것을 못 봤으며 팀도 연장전 골든골로 패했다.

그럼에도 말디니는 팀 커리어는 물론 개인적으로도 대단했는데 발롱도르 10위 안에 여섯 번 들었으며 1994년과 2003년에는 3위에 오르며 포디움에 들었는데 발롱도르 포디움에 두 번 든 유일한 측면 수비수이며 옹즈 몽디알이 뽑은 유럽 베스트 일레븐에 8회 선정, ESM 올해의 팀에 4회 선정되었으며 1994년에는 월드 사커지가 뽑은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원문 보기

 

 

축구 역사상 최고의 레프트백 Top 10

주의사항* 작성자 개인의 주관이 강하게 들어갔습니다. 아무리 설득하셔도 바꿀 생각 없습니다.* 과거 버전과는 대폭 수정되었습니다. 관점이 바뀐 부분도 있고 가진 자료가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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Ⅳ. 여론 조사

 

토마스 투헬이 떠나게 된 바이에른 뮌헨 누가 감독이 될 것인가?

 

인터뷰어: 박현수

설문조사 결과

참가자 7명 中: 데제르비 5명, 플릭 2명

 


Ⅳ-Ⅰ. 배경

 

챔피언스리그는 오랜만에 4강까지 갔으나 리그에서의 연속 우승 실패와 더불어 3위라는 최악의 성적과 더불어 포칼 2라운드에서 3부리그 하위권팀인 자르브뤼겐에게 2대1로 역전패를 당하는 등 최악의 모습들을 여러 번 보여준 투헬은 결국 이번시즌을 끝으로 바이에른 뮌헨을 떠나게 되었다.

투헬의 바이에른 뮌헨에서의 승률은 61.6%로 역대 최악의 바이에른 뮌헨 감독으로 조롱받던 클린스만 시절의 승률과 크게 다를 게 없었다. 그 외에도 지난 16년 동안 한 번도 지지 않았던 베르더 브레멘에게 홈에서 지거나 챔피언스리그 16강에 진출한 클럽 중 전력이 가장 떨어진다고 평가받던 라치오에게 지는 등 정말 부정적인 방향으로 역사를 써내려 간 투헬이었다. 그렇기에 그가 경질되는 것은 마땅하였으며, 사실 진작에 경질이 되지 않았던 것이 신기할 정도였다.

 



투헬의 챔피언스리그에서의 호성적으로 연임을 하냐 마냐로 이야기가 나왔으나 결국은 기존의 방침대로 그를 경질했고 결국 바이에른 뮌헨의 감독 자리는 공석이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그다음 감독이 누가 되느냐에 따라 바이에른 뮌헨의 앞으로의 미래가 결정이 될 것이다. 과연 누가 다음 감독으로 올 것인지 분데스리가 팀 블로그 일원들의 의견을 들어보았다.

 


Ⅳ-Ⅱ. 로베르토 데 제르비

 

 

허경원:지금 뮌헨 감독 후보로 거론된 대부분의 인물들은 이미 거절한 상황이라 보드진들이 이제는 어떻게든 데 제르비 바짓가랑이를 붙잡아서라도 선임하고자 할 거 같고, 데 세르비도 확실한 우승권 팀을 목표로 하기에 브라이튼을 떠나기로 했다고 생각합니다.

 

박현준:뮌헨은 이미 여러 감독과 접촉을 해봤지만 다 잘 풀리지 않았습니다. 데 체르비는 아직 직접적으로 뮌헨과 얘기를 나눠본 적이 없고, 현재 소속팀인 브라이튼을 떠나기로 했기에 현재 거론된 후보 중에선 가장 확률이 높다고 생각합니다.

 

오성윤:리버풀 정도를 제외한다면 타 팀과의 링크가 짙지 않았던 데 제르비가 갑작스럽게 FA로 풀리게 되었고, 현재 투헬의 마땅한 후임자를 찾지 못하고 있는 바이언이 이를 잡고자 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최근 주가가 대폭 상승 중인 데 제르비 본인 또한 어쩌면 커리어의 방점을 찍을 기회가 될 바이에른 뮌헨 감독직이 매력적인 선택지로 다가올 것으로 생각됩니다.

 

박영빈:계약기간이 남았는데도 갑작스러운 데 제르비의 브라이턴 이탈은 감독직이 비어있는 바이언과 FC 바르셀로나의 오퍼가 왔기에 떠나게 된 것으로 예상됩니다. 하지만 바이에른 뮌헨은 굉장히 부담감이 큰 구단이기에 감독을 구하는 과정에서 순탄치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데 제르비는 바이언의 감독직에 도전할 용자가 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그리고 데 제르비가 현재 브라이튼을 떠났는데 그의 입장에서는 타 팀이 오퍼를 넣었더라도 그 팀이 빅클럽이 아니라면 매력적이지 않았을텐데 현재 오퍼를 넣은 팀이 빅클럽이기에 떠난다는 생각을 가진 것 같습니다.

물론 데 제르비가 아직 빅클럽에서 보여준 모습 없이 사수올로, 브라이튼 등에서 나름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준 것이 끝입니다. 그러나 뮌헨에서 만약에 성공한다면 데 세르비 본인의 커리어의 최고점을 찍을 수 있기 때문에 뮌헨으로 향할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합니다.

 

 


Ⅳ-Ⅲ. 한지 플릭

 

 

이홍주:저는 플릭으로 바꾸겠습니다 일단 플릭 본인이 바이언 감독직을 맡을 의향이 있다는 점에서 여전히 가능성이 남아있다고 생각합니다. 다수의 언론 보도에 따르면 에벨의 반대로 플릭과의 대화에 진전이 없는 것으로 사료되는데, 이는 에벨 한 명만 마음을 바꾸면 언제든 진전될 가능성이 있는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장기 프로젝트를 새로 계획한다면 데 세르비 선임 또한 충분히 묘안일 수 있겠지만, 결국 감독선임에 시간이 지체될수록 상황에 대해 보수적인 접근을 하게 될 것으로 예상하여 이미 바이언 감독직을 수행한 적이 있던 플릭 쪽으로 기울지 않을까 싶습니다.

 

박현수: 보드진과의 마찰이 있어 바이에른 뮌헨을 떠나겐 된 플릭이지만 과거에 그와 마찰이 있었던 前 단장 살리하미지치는 바이에른 뮌헨을 떠났기에 현 보드진과 플릭은 큰 마찰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기에 플릭이 바이언으로 복귀하는데 크게 껄끄럽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만일 복귀하게 된다면 세계 최고의 스트라이커인 케인과 플릭 본인이 원하는 우수한 발밑을 가진 센터백들, 그리고 라이트백으로 복귀한 키미히와 같이 플릭의 입맛에 맞는 선수들이 여전히 많기에 다시 한번 좋은 모습을 보여줄 가능성이 높다고 봅니다. 원래부터 플릭의 공격전술에 잘 맞는 팀이 바이언이었기도 하고 바이언 역시 플릭 체제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준 적이 많기에 다시 복귀해도 좋은 성적을 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Ⅳ-Ⅳ. 요약 및 결론

 

지금까지 '토마스 투헬이 떠나게 된 바이에른 뮌헨 누가 감독이 될 것인가?'라는 주제에 대해 분데스리가 팀블로그 회원들에게 여러 의견을 들었습니다.

일부 보드진과 한지 플릭의 껄끄러운 관계와 데 제르비가 2022-23 시즌에 보여준 우수한 역량 때문에 데 제르비가 지휘봉을 잡을 가능성이 높다는 의견이 다수였지만 일부 패널들은 여전히 플릭과 바이언의 접촉이 끝난 것은 아니라고 평가합니다.

새로운 후보로 번리의 뱅상 콤파니까지 등장한 이 상황에서 바이에른 뮌헨은 여전히 자신의 홈구장 알리안츠 아레나에서 열리는 2024-25 시즌 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서 우승하기를 희망합니다. 과연 이 위대하면서도 고난한 도전을 시도할지 귀추가 주목됩니다.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신가요?

 


Ⅴ. 빅매치 승부예측

 

-Ⅰ. UEFA 유로파리그 결승전, 아탈란타 vs 바이어 04 레버쿠젠

 

1. 경기 전 소개

 

 

 

유벤투스에게 패배해 코파 이탈리아 우승에 실패했으나 이변의 주인공으로 유로파리그 결승에도 진출하며 구단의 첫 유럽대항전 트로피를 노리는 아탈란타와 리가 무패우승을 달성하며 미니 트레블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레버쿠젠이 격돌한다.

아탈란타는 스포르팅, 리버풀, 마르세유라는 까다로운 상대를 제치고 결승에 올랐다. 8강에서는 리버풀을 상대로 무려 안필드에서 3-0 승리를 따내는 등 굉장한 저력을 선보였다. 한편 레버쿠젠은 전승으로 조별 예선을 통과했으며, 카라바흐, 웨스트햄을 꺾고 4강에서 다시 격돌한 AS로마를 상대로 지난 시즌의 설욕에 성공하며 결승에 올랐다. 토너먼트 진입 후 실점이 증가해 약간의 어려움을 겪었으나, 후반전 추가시간까지 엄청난 집중력을 발휘하며 이를 극복했기 때문에 이는 결승에서도 큰 변수로 작용할 공산이 크다.

아탈란타는 콜라시나치와 더룬을 포함하여 총 4명이 부상 결장할 것으로 예측된다. 대체 선수가 있어 전력적으로 아주 큰 누수가 발생하지는 않았지만, 후반전에 강한 레버쿠젠을 상대하기 때문에 조금의 전력 누수가 아탈란타의 발목을 잡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반면 레버쿠젠은 부상자 없이 최고의 전력으로 결승 무대를 누빌 것으로 예상된다. 꾸준히 로테이션을 시도하며 주전과 비주전 사이 격차를 줄이는 데 성공한 레버쿠젠이기 때문에 변화무쌍한 베스트 일레븐 구성을 바탕으로 아탈란타를 흔들 가능성이 농후하다.

레버쿠젠은 세오아네가 사령탑을 잡던 시절 아탈란타에게 패해 유로파리그 16강 탈락을 맛본 적이 있다. 과연 레버쿠젠이 설욕에 성공해 36년 만의 유로파리그 우승을 달성할 것인지, 아니면 아탈란타가 승리해 13년 만의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릴 것인지 승부의 결과가 기대된다.


2. 경기 전 예측

 

FCU 회장 박수용: 파죽지세, 이번 시즌 전경기 무패를 노리는 레버쿠젠의 기세를 아탈란타가 막기에는 역부족이다. 특히 코파 이탈리아 결승전에서 최근 기세가 매우 나빴던 유벤투스에게도 패했다. 게다가 아탈란타는 리그 경기도 많이 남았기에 체력안배 역시 고려해야 하는 반면 레버쿠젠은 DFB포칼 결승이 남았지만 유로피리그 결승 이후의 일정이라 큰 상관이 없으며 상대도 2부 리그 13위에 불과한 카이저슬라우테른이기에 이 경기에 온 힘을 쏟을 수 있다.

FCU 부회장 허경원: 치열한 경기가 예상된다. 레버쿠젠의 기세가 하늘을 찌르고 있지만 아탈란타는 언제든지 이변을 만들어낼 수 있는 팀이다. 연장 승부 끝에 아탈란타가 우승을 차지할 것으로 예측한다.

 

FCU 회원 강다민: 레버쿠젠 승, 분데스리가 무패우승이라는 대업적을 이뤄낸 레버쿠젠을 아탈란타가 막을 것이라 생각하진 않는다.

 

FCU 회원 이홍주: 시즌 내내 좋은 모습을 보여줬던 레버쿠젠이 승리하여 시즌에 방점을 찍을 것으로 예상된다.

 


Ⅳ. 크레딧

 

매거진 총괄, 메인칼럼 작성 및 총검수- FCU 회장 박수용
컨텐츠 기획 및 여론조사 참여 - FCU 부회장 허경원
컨텐츠 기획 및 메인 표지 작성 - FCU 이사 박규빈
목차 이미지 작성 - FCU 이사 장성경

메인테마 칼럼 작성 - FCU 이사 김형섭

테마칼럼 작성 - FCU 회원 강다민
테마칼럼 작성 - FCU 회원 임규진
테마칼럼 작성 - FCU 회원 정원길
일반칼럼 작성 - FCU 회원 조장현
일반칼럼 작성 - FCU 회원 최민석

여론조사 총괄 - FCU 이사 박현수
빅매치 승부예측 작성 - FCU 회원 오성윤

여론조사 참여 - FCU 회원 박영빈
여론조사 참여 - FCU 회원 박현준
여론조사 및 승부예측 참여 - FCU 회원 이홍주

 


Ⅶ. 광고 -  첼루키 주관 챔피언스리그 결승전 단관행사 안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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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는 참여사항입니다.

(※ 미성년자 참여 불가, 신분증 필수 지참)

시간: 일요일 6/2 00:00 ~ 경기 종료까지

장소: 서울 성수 대저택(가게 이름)

참여 가능 기간: 지금부터 5월 26일까지

참가 비용: 30000원(1인당 하이볼 2잔 or 생맥주 435cc 3잔. 안주: 닭강정 소량 + 감자튀김, 빵)
(※ 제공되는 구성품의 종류를 바꾸고 싶으신 분들은 첼루키군 인스타 DM으로 미리 말씀해 주시면 됩니다.)

참가 방법: 카카오뱅크 3333-16-8410621 신준으로 입금 주시면 참가 신청 완료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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